
국내 제조업체 57만여곳 가운데 30년 이상 업력을 가진 곳은 3.9%(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15년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전체의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한 세대 이상 사업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인천에는 30년을 넘어 40~50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제조기업들이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부품과 제품을 생산해내는 기업들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해 보이는 제품들도 있지만,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철강과 자동차, 반도체 등 대기업들의 생산 공정에 빠져서는 안되는 요소들이다.
# 모터·로봇감속기 생산 '(주)에스피지'
글로벌기업 납품… 송도 R&D센터 중심 아낌없는 투자
나노미터 '수술용 로봇' 목표 국내외 인증 획득 주력
1973년 창립한 (주)에스피지(SPG)는 모터와 로봇감속기를 생산하는 인천의 강소기업이다. 흔히 모터를 생각하면 선풍기에 장착된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가전제품을 비롯해 자동문, 공장에서 쓰이는 생산 로봇에도 들어갈 만큼 많은 곳에 쓰인다.
1999년 미국 최대 가전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우수협력업체로 선정된 데 이어 월풀(Whirlpool), 스웨덴 가전제품 기업 일렉트로룩스, 삼성전자 등 주요 글로벌 가전기업에도 20년 이상 제품을 납품하는 등 소리 없이 강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소형용 모터 시장에서 56%의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입지가 탄탄하지만, 에스피지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스마트공장 생산 로봇의 핵심 부품인 초정밀감속기 생산이다.

감속기란 회전운동을 하는 모터에 기어를 연결해 속도를 늦추면서 힘을 전달하는 부품인데,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산업용 로봇의 관절에 쓰인다. 특히 스마트공장 보급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2019년 초정밀 로봇감속기 수출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남기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스마트공장과 바이오 등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로봇에 들어가는 감속기 품질을 높이기 위해 송도 R&D 센터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 이 같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 25개국에 진출한 에스피지의 다음 목표는 나노미터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수술용 로봇'의 생산이다.
에스피지 관계자는 "송도 R&D 센터에 상주하는 65명의 엔지니어를 주축으로 국내와 해외 기술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 자체 인증 실험실까지 확보한 게 가장 큰 동력"이라며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을 통해 소형 모터 및 전문감속기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절삭공구 전분야 1위 기업별 최적화 공구 공급 노려
19개국에 현지 공장 보유 10만개 달하는 제품 생산
세계적인 절삭공구 생산업체로 정평이 난 와이지-원(YG-1)도 인천을 대표하는 중견 제조기업이다.
와이지-원의 주력 제품은 자동차 부품 등의 금형을 만들거나 비행기 동체를 깎을 때 쓰는 '앤드밀(End Mill)'인데, 1970년대만 해도 앤드밀은 제조업계에서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이었다.
1982년 인천에서 첫번째 공장을 세울 당시 국내 앤드밀 시장 수요는 수십억원대에 그칠 정도로 작았던 탓에, 와이지-원은 설립 초기부터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제조업의 성지로 여겨지는 미국과 독일 시장을 공략해 수출 성과를 냈고,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국내로 퍼지면서 한국 주요 기업들도 앤드밀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앤드밀은 어느 업체가 생산하든 외형은 동일해 보이지만, 균일한 강도와 내구성을 유지하는 부분에서 와이지-원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에는 절삭공구 수입품 비중이 2%에 그쳤던 일본 시장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와이지-원은 현재 앤드밀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달리고 있다. 전세계 19개국에 29곳의 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10만개에 달하는 각종 절삭공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70~80%가 해외 시장에서 창출되고 있을 만큼 정밀 공구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와이지-원의 저력은 송도 신사옥과 부평에 위치한 공장에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계양구 서운산업단지에 스마트공장을 짓는 등 국내에서의 연구개발과 생산 설비 투자도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다. 앤드밀 생산뿐 아니라 절삭공구 전 분야에서 종합 1위를 달성하고, 대형 제조기업 별로 최적화한 공구를 공급하는 것이 와이지-원의 향후 계획이다.
핵심 부품 '풍구' 생산 세계 1위… 40%대 점유율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철소 관련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주)서울엔지니어링과 석유화학과 에너지, 식품업, 농업 등 여러 산업에 필요한 펌프를 생산하는 청우하이드로도 인천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철강업체에서 철을 녹일 때 쓰는 고로의 핵심 부품인 '풍구'생산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서울엔지니어링은 1967년 설립됐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의 제철소 공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분야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고로 위로 쏟아지는 철광석 등을 녹이려면 1천500℃ 이상의 열풍이 고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열풍의 통로가 바로 풍구다. 고로 내부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해야 불량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철강 제품 품질을 높이기 위해 포스코와 협업하면서 온도를 제어하는 기술을 확보한 서울엔지니어링은 2010년대 들어 해외시장 점유율도 크게 끌어올린다.
포항과 광양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지금도 '서울엔지니어링표' 부품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인도와 벨기에 등 해외 제철소에 수출하는 물량까지 포함하면 40%대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 국내 1위 펌프 업체 '청우하이드로'
공장 발전소·제철소 등서 '주목' 원전 수혜 효과도
국내 1위 펌프 업체인 청우하이드로도 포항제철과 연이 있는 회사다. 포항에 제철소 부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외국산 펌프가 아닌 자사 펌프가 선정된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청우하이드로는 이후 수력과 원자력, 화력 등 발전소에 필요한 펌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산업체 역시 물이 없이는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다. 원료와 자재 등도 생산에 필수지만, 물이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용 특수펌프는 짧게는 수백미터에서 길게는 수천미터에 달하는 깊이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기에 내구성이 중요한 제품인데, 국내 주요 석유화학 공장과 수력, 화력, 원자력 발전소, 제철소 등에서 각광받는 제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로 수출되면서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에도 원자력발전소용 펌프를 수출하고 있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산업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비중이 50% 이상 늘었다.
펌프가 물을 빨아들이는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려 공장과 발전소의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면서,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겠다는 게 청우하이드로의 포부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