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를 그렸다.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건물도 그렸다. 미술관과 책에서 접한 작품을 자신의 색채로 다시 그렸다. 이뿐만 아니다. 때론 보고 느낀 것을 도자기에 새겨 넣었고, 시시콜콜 느낀 감정을 인형을 만들어 표현했다. 장르의 경계를 횡단하며 뚜벅뚜벅 다작의 길을 이어온 '원로작가'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 막 서른에 이른 발달장애 작가 최봄이가 붓을 쥐기 시작한 이후 걸어온 발자취다.
최봄이 작가는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개인전 '서른, 나의 나무'를 수원시 교동에 있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문화관 2층 갤러리에서 연다. 최 작가를 21일 수원 행궁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 천진한 미소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최 작가의 곁엔 그의 매니저이자 '25년 지기' 고모 최혜란 씨가 함께 자리해 인터뷰를 도왔다. 최혜란 씨는 "서른이면 미술 작가로서 젊은 나이인가 싶지만, 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쉴새 없이 작품을 만들어왔다"며 "이제 서른을 맞아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펼쳐놓고, 앞으로의 작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이번 개인전의 의미를 짚었다.
"분주히 이리저리 움직이다가도,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는 시간이면 차분히 자리를 지켰다. 그림을 그릴 때면 노래도 흥얼거렸고 1~2시간은 거뜬히 집중했던 것 같다." 조카의 적성을 단박에 찾았다기보다는 그가 유독 그림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졌으므로, 나아가 평생 그림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최혜란 씨는 그때 했다. 그 길로 집 주변 복지관의 미술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을 찾아 최 작가의 예술활동을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 작가는 예상보다 빨리, 흠뻑 미술에 빠져들었다. 주변의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예민하게 작품에 담아냈다. 스무 살이 넘어 매년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지난 2020년에는 서울 문래 창작촌의 '스페이스 나인'에서 '에드와두 웨스턴 아메리카 미국 달팽이 입니다'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미국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의 '앵무조개'를 오마주해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대표 작품을 전시 제목에 그대로 녹인 것이다.
최 작가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여전히 높은 빈도로 '나무'가 등장한다. 지난 활동을 되짚는 이번 개인전의 제목을 '나의 나무'로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그의 풍경화 '나무2'와 '봄의 나무'도 이번 전시에 오른다. 최혜란 씨는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물론, 봄이가 LA 게티 센터 박물관과 베네치아·코펜하겐 등 관광지에서 본 작품과 풍경을 구체화한 작품들도 전시장을 채울 예정"이라고 했다.
최 작가는 꼭 하루의 그림 작업을 마무리할 때 그날의 기분을 '한 줄 단상'으로 표현한다. "기분이 좋아요"와 "마음이 좋아합니다"라는 일상의 감정을 담은 문구도 있고, "수채화 색칠을 하고 싶어요"라는 내일의 바람을 담은 문구도 있다. 고모 최혜란 씨는 최 작가가 준비한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나름의 감상 방식대로 순수하고 꾸준하게 작품세계를 만들어온 작품을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