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김창수 위스키1
김창수 김창수위스키증류소 대표에게 한국형 위스키는 사명감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위스키 한 잔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김포 통진읍 소재 그의 증류소 안에서 자신이 만든 위스키를 들고 촬영하고 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문화의 힘을 역설한다.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2022년 대한민국은 문화 강국으로 거듭났다. K팝이 지구를 하나로 만들고, K드라마가 전세계를 주름잡는다.

그와 이름이 같은 서른일곱 김창수(김구의 개명 전 이름은 김창수다)는 술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유독 K위스키를 가지지 못한 데 의문을 가졌다.

특별할 것 없던 어느 날, 문득 찾은 음식점에서 새로 나온 전통주를 접했고, 그 술을 만든 이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김창수 명인임을 알게 된 후 강한 끌림을 느꼈다. 언젠가 술을 만드는 일을 해봐야지. 막연한 꿈은 공부로 이어졌다. 전통주며 와인이며 맥주, 칵테일 등 주종을 가리지 않았다. 위스키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 싱글몰트 위스키인 라프로익을 맛봤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신기했다. 감탄은 탐닉으로, 또 의문으로 이어졌다. 왜 한국엔 훌륭한 위스키가 없을까. 결론이 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한번 만들어보지, 뭐. 한국형 위스키 시장의 문을 연 '김창수위스키'는 그렇게 시작됐다.

위스키
/클립아트코리아

#한국의 맛상, 위스키로 한땀 한땀 채운 청춘


김창수위스키를 만드는 이는 김창수 대표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인스타그램에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대한민국 위스키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그가 손으로 한땀 한땀 위스키를 만드는 동안, 그의 청춘 역시 위스키로 한땀 한땀 수놓아지고 있다. 대학시절 곳곳에도 위스키가 묻어있다. 현재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마크도 대학생 때 만들었다. 불꽃인듯, 물방울인듯, 곡선 두개가 만날 듯, 만나지 않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태극 마크에서 착안해 증류기 모양을 형상화했다. 한국형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게 제 꿈이고, 위스키를 상징하는 게 증류기니까 그런 의미를 담은 것"이라며 "알파벳 C와 S를 가리키기도 한다. 제 이름 이니셜이다. 그리고 증류주의 상징이 불과 물이다. 불과 물의 이미지를 모두 함축했다"고 설명했다.

로고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주류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몇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회사원이 됐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사표를 썼다. 한국형 위스키를 이제부터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지만 국내엔 먼저 그 길을 간 이가 없으니, 당연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메일을 썼다. 가장 먼저 보낸 곳은 신생 소규모 증류소인 일본 치치부 증류소였다. 새로 생긴 곳이니 함께 성장하며 배울 점이 많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바에서도 일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로 향한 것은 국내에선 도무지 풀 수 없는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내 102개의 증류소를 모두 돌면서 일을 시켜달라고 할 요량이었다. 시작은 패기였지만 서른 군데쯤 퇴짜를 맞을 때부턴 포기에 가까워졌다.

스코틀랜드내 102곳 증류소 돌며
일 시켜달라 했지만 번번이 퇴짜
마침내 日 치치부에서 교육 기회


자전거를 타고 텐트에서 자면서 제대로 먹거나 씻지도 못했다. 괴로움 속에서도 오기가 생겨 목표했던 102곳을 모두 찍었던 날, 전환점을 맞았다.

첫 메일을 보냈던 치치부 증류소의 직원을 스코틀랜드의 바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만남을 꾸준한 인연의 시작점으로 만든 데는 수년간 지속된 그의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김 대표는 "치치부 증류소에선 계속 애매하게 거절당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집에서 위스키를 직접 만들어보고 연구하는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런데 이걸 NHK에서 보고 촬영 요청을 해왔다. 당시에 일본 닛카 위스키의 창업자인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드라마 '맛상'이 대히트를 쳤는데, 그때 NHK가 나를 한국의 맛상으로 조명했다"며 "그때 NHK에 치치부 증류소에서 연수를 받을 예정인데 그걸 촬영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치치부 증류소엔 NHK에 방송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연수를 받게 됐다. 지금 우리 증류소도 치치부 증류소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위스키 한 잔 만드는 게 목표


김창수위스키증류소는 김포 통진읍에 있다.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이곳에 소형 공장이 많아서였다. 수도권인 만큼 접근성이 좋은 점도 고려 요인이었다. 2020년 제조 면허를 취득하고 첫 위스키를 올해 4월에 출시했다. 지난 9월엔 두번째 제품을 내놨다.

첫 한국형 위스키의 시작점엔 호평이 가득했다. "숙성연수가 2년이 채 안 돼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이상"이라는 후기가 줄을 이었고, 오픈런이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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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스코틀랜드에 기준이 맞춰져서 그렇다. 스코틀랜드는 연교차가 적고 습해, 숙성이 느리고 증발도 적은 편이다. 10년을 숙성해도 10%도 증발하지 않을 정도다. 10년 숙성한 게 아랫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숙성에 매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그렇다보니 숙성연수가 10년 정도면 사람들이 짧다, 저렴한 위스키라고 인식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후가 정반대다. 3년 정도만 숙성해도 스코틀랜드에서 10년 이상 숙성한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증발도 빠르다. 10년 이상 숙성하면 90%가 증발한다. 숙성연수는 좋은 위스키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저는 오크통의 퀄리티나 사이즈, 제조방식 등 보이지 않는 다른 조건을 최상급으로 맞췄다. 보이는 숙성연수는 낮지만 맛은 더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 4월 첫제품… 9월 두번째 출시
숙성과 증발 빠른 우리나라 기후
연수는 낮더라도 맛은 더 좋을 것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크고 작은 고충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한국에서 이런 위스키를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위스키와 관련해 국내 실정에 맞는 규정이 제대로 없다. 여러 제도적 규정이 스코틀랜드 기준을 참고해서 마련돼있다. 기후가 서로 다른 한국과 스코틀랜드는 같은 기간 증발량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한국 역시 연간 증발량을 스코틀랜드처럼 2%로 간주한다. 국내에선 스코틀랜드와 달리 1년에 2%를 넘어 거의 10%가 증발한다는 점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국내 상황에 맞는 규정 등이 없고 여러 인프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계속 생긴다"며 "오픈런을 한다고 하는데, 저로선 오늘 만든 위스키는 숙성해서 3년 뒤에 팔 수 있다. 오늘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대로 빚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이다보니 사실 수익보다는 사명감으로 한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낄 위스키 한 잔을 만드는 게 제 목표다. 솔직히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죽더라도 어떻게든 위스키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달려온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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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딴 세 번째 위스키가 머지않아 출시된다. 두 번째 증류소도 구상 중이다. 보다 본격적인 K위스키 시대를 열기 위해, 대한민국이 위스키 강국으로도 발돋움할 날을 위해 조금씩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김창수위스키만의 특징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아직은 이르다"고 했다. 3년 이상 숙성한 정식 제품이 출시될 때에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직은 소규모 증류소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것에 가까워요. 그런 결과물들이 쌓여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하고 그때 진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겠죠." K위스키 장인의 의지는 결연했다.

정말 궁금했던 것 중 하나를 막판에 물었다. "주량이요? 요새는 줄어서 한 병 정도…."

대담/이윤희 경제부장 flyhigh@kyeongin.com,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김창수 대표는?

▲ 1986년생
▲ 인하대학교 졸업
▲ 2020년 ~ 김창수위스키증류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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