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찬 배우
배우 전박찬. /경기아트센터 제공

"축복이면서 저주 어린, 환희이면서 악몽 같은 환영. 맥베스의 이 대사가 공연에 참여하게 된 저의 소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가장 강렬한 비극이자, 욕망과 탐욕 앞에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연극 '맥베스'.

지난 수개월의 시간을 오롯이 '맥베스'라는 인물이 되기 위해 달려온 배우 전박찬은 처음 배역을 제안받고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풍채가 좋고, 무술 실력이 뛰어난 맥베스와 외형적인 부분에서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서 맥베스를 맡았다고 하니 다들 놀라워했고, 저도 약간 의심했다"며 "한태숙 감독님이 저를 작품으로 만들려고 할 때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거란 믿음으로 하게 됐다"고 떠올렸다.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내달 3~13일 공연


한태숙 경기도극단 예술감독과 3년 전 '대신목자'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전박찬은 "감독님이 왜 절 캐스팅했는지 말을 아끼시지만, 명확한 것은 체구도 작고 장군 같지 않은 맥베스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건지 고민하고 계시고, 계속해서 같이 찾아 나가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보지 못한 맥베스로서 사람들에게 납득할만한 것들이 보여져야 한다고 요구하셨다"고 말했다.

사실 맥베스는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다. 그런 인물을 배우는 과연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을까. 전박찬은 "너무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전 그대로 하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의미가 있지만, 현대 관객은 동시대적 이슈로 바라본다. 그렇게 접근해도 맥베스는 어떤 인간일까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손에 잡히지 않는 대본을 부여잡고 있다가 '꺼져라 꺼져 덧없는 빛이여'라는 부분을 읽는 데 무엇인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우리의 인생 또는 한 편의 연극처럼, 맥베스 입장에서도 모든 것이 덧없는 것 같다. 그의 외적인 부분보다 인간이 자기 욕망을 탐하기 위해서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았다"며 자신이 찾아낸 맥베스를 설명했다.

맥베스
경기도극단의 연극 '맥베스' 연습 현장. /경기아트센터 제공

'셰익스피어' 비극 탐욕 앞에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 그려
풍채 등 장군 배역 이미지 달라 처음엔 제안 믿기지 않아
고전과 현대 사이 간격 좁혀 '동시대' 반영해 차별화 꾀해


경기도극단 단원들과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그는 "서울 대학로나 속해있는 팀에서 활동하다가 다른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며 "긴장하면서도 아닌 척 할 때 단원들이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단원들이 이 극장에 쌓아놓은 힘이 있기 때문에 한 발 들여놓으면 잘 이끌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는 고전에 현대적인 요소를 섞어내며 색다른 시도를 했다. 지난 8월부터 배우에게 전달된 각색본만 10개가 넘을 정도라고.

전박찬은 "리딩하고 장면을 만들어 나갈수록 셰익스피어가 왜 훌륭한지,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각색해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뭔지 알게 돼 다소 문어체적이거나 문학적인 독백 대사들도 들어왔다"며 "고전과 현대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작가와 연출이 고생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작품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어떤 시대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동시대와 멀지 않은 느낌을 주며 고전 맥베스와의 차별을 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악의 유혹에 빠진 인간, 그 악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딜레마는 맥베스와 닮아있다. 작품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전박찬은 "동시대의 누군가를 투영할 수 있고, 누군가를 쫓아갈 수 있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맥베스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시면 됩니다. 보통의 존재, 혹은 나의 욕망과 대입해 보면 좋은 작품이 될 겁니다."

공연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11월 3일부터 13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