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마와 모터사이클
'꽃가마와 모터사이클'.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 익숙하지 않지만 이 또한 백남준의 직함이었다. 편지와 악보, 에세이, 기획안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여러 언어로 남긴 백남준은 1960년대 후반부터 보고서를 통해 사회 문제 해결을 꿈꾸고 제시하는 정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백남준아트센터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아닌 다른 길목에 서 있는 백남준을 마주할 수 있다.

당시 사회 향해 내놓은 제안들 녹여내


이번 전시는 1968년부터 1979년 사이 백남준이 작성한 보고서가 시작점이 된다.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과 같은 글과 작품은 백남준이 당시 사회를 향해 내놓은 다양한 제안들이 녹아있다.

전시는 이러한 보고서의 내용과 백남준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그의 제안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떠올리게 한다.

'해커뉴비' 여정 시작하는 미래세대 바람
'…모터사이클' 과거-현대 직관적 교차
'코끼리 수레' 신구 매체 뚜렷하게 대비
'…자서전' 소통과 이해 통한 세계 평화


나의 파우스트
'해커뉴비'.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전시장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작품 '해커 뉴비'는 백남준이 주창한 개념인 '전자초고속도로'를 여행하는 다음 세대의 모습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해커'와 신규 사용자를 뜻하는 신조어 '뉴비'의 뜻을 가진 어린이 로봇 조각은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백남준의 자세 또는 전자초고속도로에서의 여정을 시작하는 미래 세대에 대한 백남준의 바람을 담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에는 수레나 가마, 자전거, 모터사이클과 같은 탈 것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도로교통의 발전사이자 그 연장선인 텔레커뮤니케이션과 연관된다. 롯데칠성의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 '꽃가마와 모터사이클'은 그런 면에서 과거와 현대의 교차가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화려한 네온 불빛을 내뿜으며 모터사이클을 탄 로봇은 마치 신나는 얼굴을 하고 도로를 달리는 듯하지만, 그 옆에 정적으로 서 있는 꽃가마는 이와 대조된다. 오래된 미디어와 함께 미래의 관점을 제시하는 이 작품은 27년 만에 외부로 모습을 나타내며 더욱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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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작품 '코끼리 수레'.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코끼리 수레'는 바퀴 달린 카트 위에 서 있는 코끼리가 수레를 끌고 가는 작품으로, 수레 위에 잔뜩 쌓인 텔레비전과 라디오, 축음기의 여러 전선이 코끼리와 이어져 있다.

코끼리 등에는 아디다스 우산을 쓴 불상이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태국의 코끼리 축제 영상이 흘러나오며 백남준 특유의 위트와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출구를 향해 가는 이 코끼리 수레 역시 신구 매체를 뚜렷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백남준은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았고, 미술관과 대학, 연구소와 방송국을 오가며 새롭고 성능 좋은 장비들을 사용해 자신이 원하던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제도적 지원과 예술가 네트워크, 개방된 사회기반시설의 공유 등을 통해 배우고 실현하던 백남준의 활동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해커뉴비
'나의 파우스트-자서전'.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그 중에서도 작품 '나의 파우스트-자서전'은 총 13점의 대규모 연작 중 하나로 '예술', '교육', '농업', '통신' 등의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단상 위의 텔레비전, 위로 높게 솟은 안테나, 비디오 테이프와 깨진 안경, 한쪽에 무심한 듯 걸려있는 백남준의 외투 속에 꽂혀 있는 신문 등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세계의 평화를 이루려 했던 백남준 평생의 과업을 전하고 있다.

컨설턴트 백남준은 과연 무엇을 고민했으며, 예술과 기술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백남준의 새로운 모습으로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마무리 지을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