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전정우 (3)
자신의 '심은 혼서체'로 쓴 '1字書 千字文(일자서 천자문)' 앞에 선 심은 전정우 서예가. 심은 전정우 서예가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추사체 연구에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단 한 글자도 겹치지 않는 4언절구의 한시(漢詩) 250구로 이뤄진 천자문(千字文)은 대서사시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천자문은 자연 현상은 물론, 도덕, 규범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자를 처음 공부하는 이들의 교재로 쓰이기도 해 적어도 '천자문'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천자문을 120여 종류의 서체로, 또 다양한 크기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미술관이 인천 강화에 새롭게 들어섰다.

인천의 심은(沈隱) 전정우 서예가는 5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미술관을 만들었다. 서체는 다양하지만 작품을 쓴 이는 한사람이다. 그래서 미술관 이름도 자신의 호를 따 '심은 천자문 서예관'으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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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개관한 '심은 천자문 서예관'(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강화서로 861-17) 앞에 선 심은 전정우 서예가.

전정우 서예가는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내가 수십여년 동안 정성을 다해 쓴 나의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다시 생겼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면서 "심은 천자문 서예관이 서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은 지역의 명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심은 전정우는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 동정(東庭) 박세림(1925~1975) 등의 뒤를 이을 지역 대표적인 서예가로 꼽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50여년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문학산 정상에 있는 '문학산'이란 표지석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강화에서 태어났는데, 자신의 모교인 강후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를 빌려 20여년동안 '심은미술관'을 운영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정우는 심은 천자문 서예관이 문을 연 것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가 말은 아꼈지만, 인천시와 강화군이 예산을 들여 옛 심은미술관 자리에 문화 시설을 조성하려는 논의가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크고 작은 오해도 생기고 무례를 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 잊었고 누굴 탓할 마음도 없다고 했다.

전정우는 "심은미술관이 없어지고 그동안 작업해온 귀한 천자문을 어디서 보여드리나 고민이 많았다"면서 "작게나마 이렇게 심은미술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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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4 때 '미군 헬리콥터 태워준다' 선생님 꾐에 들어간 서예반
급훈·시간표며 교장실 학교현황·교육과정 모두 직접 쓰기도


심은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심은이 처음 손에 붓을 쥔 것은 4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정도로 이해하면 될 수업시간에 서예를 처음 배웠다. 담임 선생님이 "서예반을 하면 미군 헬리콥터를 태워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무작정 서예반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강화 고려산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미군 헬리콥터가 자주 날아다녔다고 한다. 물론 그가 서예반에 들어간 이후로 선생님은 헬리콥터의 '헬'자도 꺼내지 않았다.

심은은 "그때 서예가 참 좋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처음 글자를 쓰는데, 누가 보더라도 서예반 전체에서 제일 빼어난 글씨를 썼다. 어린 그가 알아차릴 정도로 독보적이었고 심은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선생님도 칭찬했고, 친구들도 신기해했다.

물론 심은 자신도 무척 놀랐다. 하지만 자신이 왜 글씨를 잘 쓰는지, 어떻게 잘 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런 것이 싫지 않았다. 칭찬도 듣기 좋았다.

심은은 "그 뒤로 틈만 있으면 글씨를 썼다"면서 "당시 서예 교과서가 있었는데, 중학교·고등학교 형님들의 서예 교과서를 구해 밤낮으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서예를 계속했다. 글씨를 잘 쓰니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가욋일도 많이 했다. 각 학급의 급훈이나 학급 시간표도 모두 그의 글씨로 만들었고, 교장실의 학교 현황과 교육과정 등이 안내된 게시판도 그의 글씨로 썼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서 '가작' 상을 받기도 했다.

옛날 모든 집이 마찬가지였듯 심은의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대학을 꿈꾸지 못하고 서울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장학금을 놓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학교 공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는데, 실습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부터 서예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진학한 대학에서도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항상 글씨를 쓰고 싶은 갈증을 느꼈다. 첫 직장이 한국화재보험협회였는데, 직장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서예를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다녔다. 그때 서울에서 만난 스승이 한국 근현대 서예의 대가로 손꼽히는 여초 김응현 선생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재보험협회 경력을 인정받아 삼성그룹 비서실에 특채되며 긴 근무시간과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스승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서예를 접어야 했다.

긴 근무시간·높은 업무 강도… 서예 접어야만 했던 직장생활
뒤늦게 꽃피워 나간 꿈, 남은 인생은 추사체 연구에 쏟을 계획


일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그가 맡은 임무였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라는 말도 그가 그룹 내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성에서 일하며 공장의 환경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유지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했고, 직원 기숙사를 호텔급으로 유지하게끔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단다.

7년 동안 신이 나게 일하고 그만뒀다. 승진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간 영영 서예를 그만두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고 이병철 회장은 "회사에서 일할 때처럼 열심히 해서 최고의 서예가가 되어 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삼성을 다닐 때처럼 서예에 몰두했다. 비로소 뒤늦게 시작된 그의 서예 인생은 꽃을 피워나갔다. 사직하고 난 뒤 6개월 뒤 국전에서 입선했고, 이듬해에는 국전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동아미술제에서 서예부문 미술상을 받고 전각부문 특선 상을 받기도 했다.
 

45세가 되던 1992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49세인 1996년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2004년 세번째 개인전 이후 그는 고민 끝에 천자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초고를 쓰기 시작해 다섯 체를 석 달이 안 걸려서 마쳤다. 재미도 있었지만 한 체를 마칠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는 120여개 서체에 6개의 크기가 다른 작품을 완성했다. 천자문을 1번 쓰는 데 15시간 걸리는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고 한다.

"아망오(我忘吾)라는 말이 있어요. 나를 잊는다는 것인데, 무념무상의 상태라고 할까요. 나라는 존재를 잊을 정도의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어요.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거나 잘 쓰려고 한다거나 잡념이 섞이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글씨 쓰는 게 힘들고 아프면, 쓰지 말아야죠.(웃음)"

그는 자신의 남은 서예 인생을 추사체를 연구하는 데 쏟을 계획이다. 그는 "현재 추사 선생의 글은 명맥이 끊겨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추사체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 내 사명감이라 생각하고 바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글·사진/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심은 전정우 서예가는?

▲1948년 강화 출생
▲강후초·강서중·경기공고·연세대 화공과 졸업
▲여초 김응현(서예)·구당 여원구(전각)·해오 김관오(한문) 사사

▲수상경력
-1987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동아미술제 서예부문 미술상
-2012 자랑스런 강화인상
-2016 인천문화상

▲중요전시
-1992 제1회 서예 개인전(조선일보 미술관)
-1996 제2회 서예 개인전(예술의전당 서예관)
-1997 세계서예비엔날레 초대전 초대 출품(전주시)
-2005 한·중·일 대표작가 30인전 참가(중국문화원)
-2013 중앙일보·예술의전당·인천시 공동주최 '심은천자유희전'
-2017 인천시 주최 '심은 전정우 유희자여전'(인천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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