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만나는 정동제일감리교회 신관(1978년)을 비롯해 대전 이응노미술관(2007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2007년)를 설계한 원로 건축가 백문기.
그는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1931~1986), 김중업(1922~1988)이 작고한 이후 공백 상태가 된 한국 건축계의 새로운 파도를 일으킨 '4.3그룹'의 회원 14명 중 한 명이다.
1990년 결성된 4.3그룹은 한국 건축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학습한 건축운동으로 승효상, 김인철, 인천 동구 괭이부리마을 '기찻길 옆 공부방'을 설계한 이일훈(1954~2021) 같은 걸출한 건축가들이 속했다.
백문기 선생을 비롯한 4.3그룹 건축가들은 1990년대 초 개발 바람이 불었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 운동'을 펼치며 북촌의 가치에 대해 서울시를 설득하고 헐리기 직전이던 한옥들을 지켜냈다.
백 선생은 북촌 한옥마을을 보존하는 집마다 1억원을 지원하는 파격 조건을 서울시에 제안했고, 서울시는 그 정책을 받아들였다. 북촌 한옥마을은 초입만 조금 헐리고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며 이른바 'K-문화'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의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종로구가 짓는 공공건축물의 타당성, 품질과 기술, 문화적 가치를 자문하고 있다.
인천의 지역 언론이 서울에서 주로 활동한 중량급 원로 건축가의 이력을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인천의 건축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선생은 10여년 전부터 두세 달에 한 번씩 인천을 찾아 골목을 탐색하고 아무도 몰랐던 건축물의 가치를 발굴했다.
인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2018년 무렵부터 준설토 투기장으로 매립된 중구 '북성포구 살리기'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전문가로서 인천시 등 행정기관에 포구 재생화 등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북성포구는 끝내 매립됐다.
배다리·괭이부리 마을·애관극장… 정작 내부에선 가치를 몰라
자꾸만 도시를 닮아가려 하면 지역특색 사라지고 무표정해질 뿐
북촌 한옥마을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보존하고 지원해야
건축은 종합예술… 인천서 발견하지 못한 건물 계속 찾아나설것
지난 14일 오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만난 백문기 선생에게 왜 인천의 가치를 강조하는지 물었다.
"조선왕조의 건축 역사 문화가 남아있는 공간은 서울 종로구뿐입니다. 조선왕조 다음 시대로 가면 근대 건축 문화의 총집합이 바로 인천입니다. 인천의 건축은 근대 노동문화가 집합돼 있습니다. 저는 인천 구도심을 거닐다 보면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성냥공장, 비누공장(2017년 철거된 1930년대 애경사 건물)처럼 한국의 모든 공산품이 만들어졌던 지역이며 배다리, 싸리재, 괭이부리마을, 애관극장 등 근대 생활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의 가치를 오히려 인천시 등 지역 내부에서 모르고 있습니다."
백 선생은 배다리나 개항장 같은 인천 구도심을 북촌 한옥마을처럼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보존하고, 보존을 위해선 집주인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서 서울 종로 다음 가는 문화 콘텐츠가 집약된 곳이 인천이라고 했다. 북성포구를 예로 들었다.
"북성포구는 오래된 프런트 데스크(Front Desk)입니다. 송도 신도시에 새로운 프런트 데스크(인천 신항)가 조성되고 있는데, 과거의 프런트 데스크를 굳이 메워 없애야 했을까요. 인천은 해양도시입니다. 과거엔 골짜기 곳곳으로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왔고 그 곁에서 사람이 살았습니다. 지금은 산업화로 그 바다를 메우고 내륙도시처럼 됐지만, 인천의 지역성이 해양도시인 것은 지금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도시는 신도시 나름으로 개발하되 구도심은 있는 그대로 정돈을 하면서 오히려 옛 모습을 되찾도록 메운 땅을 뜯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이 자꾸만 도시(서울)를 닮아가려 하면 할수록 무표정해질 뿐입니다."
백 선생은 건축물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에 맞는 '언어'로 표상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 강남은 그 지역에 맞는 건축 특징이 있어야 하고 인천은 해양도시에 걸맞은 건축 언어가 표현돼야 하는데, 아파트처럼 모두 똑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천의 건축 언어를 보여주는 근대건축물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북촌 한옥마을 지키기 운동을 하면서 여러 한옥을 봤지만, 동구 배다리에 있는 굴뚝이 6~7개씩 달린 한옥(여인숙 건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옛날 여관이나 하숙방으로 쓰였을 역사적 문맥에서 가치 있는 건축물이 인천에서 너무 쉽게 철거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머물던 주택들도 인천에 많지만, 너무 쉽게 사라졌습니다. 공공기관에서는 건축적 가치가 떨어져 보존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과연 저 같은 전문가에게 물어본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건축적 가치는 전문가들이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이미 답을 정해놓은 후에야 전문가한테 묻곤 합니다. 서울시가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북촌 한옥마을을 남겼듯 인천시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건축의 인문학적 가치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정림건축 등 굴지의 건축사사무소 사장까지 지낸 백 선생은 교회 건축을 주로 설계했다. 그는 다작한 건축가가 아니다. 50여년 동안 30개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오랜 시간 공들여 신중하게 작품을 만들어 냈다.
백 선생이 30년 전 설계한 서울 강남의 디자인회사 사옥은 건축주가 30년이 지나 건물 설계자에게 리모델링을 맡기는 건축계에서 전례 없는 일도 있었다. 백 선생은 현재 건축 문화가 다른 예술처럼 대중에게 친숙해지도록 돕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김영경 한양여대 교수와 함께 북촌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 세미나 프로그램 '북촌의 약속'을 진행하며 강의하고 있습니다. 선화예술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박해영 선생님과 '그림비'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생들에게도 건축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천을 자주 찾을 겁니다. 앞서 얘기했듯 인천은 그 지역에서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뛰어납니다. 건축은 종합예술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인천에서 발견하지 못한 건축물을 계속 발견하고 싶습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백문기 건축가는?
▲1948년 서울 출생
▲1973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9년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
▲1998~2005년 정림건축 수석부사장
▲2007~2008년 정림건축 디자인담당 사장
▲2008~2011년 공간 스페이스그룹 사장
▲1999~2000년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2003~2005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주요 작품
- 1978년 정동제일감리교회
- 1995년 만종감리교회
- 2002년 원당성당
- 2006년 과천수돗물연구센터
- 2007년 이응노미술관
- 2007년 김대중컨벤션센터
- 2009년 김포고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