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묵 김포소방서장은 과거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대원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단지 그때의 경험 이후 그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방관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여름, 김포소방서 공무직 직원들의 근무환경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현장대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청사 휴게실 한쪽에 냉난방시설을 갖춘 공무직 직원들의 침실이 만들어졌고, 구내식당 한쪽에도 휴식공간이 마련됐다. 조리원과 영양사, 청소노동자 등 총 4명에 불과한 공무직 식구들을 위해 소방서 전 대원이 뜻을 모았다.
김종묵(50) 김포소방서장은 올해 7월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공무직 직원의 처우 개선을 추진했다. 신임 소방서장이 통상적으로 현안파악에 우선 매달린다는 걸 고려할 때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는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직 직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되면 현장 소방관들의 능률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시설 보강을 서둘렀다.
21일 만난 김종묵 서장은 남송의 유학자 육구연의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가난한 게 걱정이 아니라 불평등이 걱정이라는 의미)'이라는 말을 소개했다. 김 서장은 "과거 어떤 분이 내게 '우리 소방직들 해줄 공간도 없는데 공무직들을 어떻게 해주느냐'고 얘기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곧이어 "공직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기관이나 조직에서든 불공정이 존재했고, 주로 소외되는 이들은 소수 직렬인 공무직 직원들이었다"며 "공무직도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밥을 먹는 엄연한 가족임에도 처우 부분에서 항상 소방직에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취임하자마자 공무직 처우 개선 '이례적' "지원업무직원 좋은 환경 일하면 전체 능률 올라" 효과적 통솔 위해 직원과 교감 '설득형 리더십' "구조 현장서는 눈짓·몸짓으로만 호흡 맞출 때도"
김포소방서에는 직렬 구분 없이 누구나 시설을 함께 누리는 분위기가 이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공무직 직원들의 의욕도 당연히 높아졌다.
김종묵 서장은 친절한 소방서장이다. 업무 지시 과정에서 직원들을 억압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없다. 김 서장의 리더십은 '설득형'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효과적인 통솔을 위해 그는 직원들과 교감을 많이 시도한다.
약 5개월간 김 서장을 겪어본 직원들은 그에게서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직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종종 보통의 소방대원처럼 나타나 격의 없이 일상 대화를 나눈다고 전언한다.
김 서장은 "분초를 다투는 인명 구조 현장에서는 눈짓과 몸짓만으로 호흡을 맞춰야 할 때가 있다"며 "그러려면 평소 직원들끼리 자주 소통하면서 서로의 특징과 생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김종묵 김포소방서장이 재난대응 긴급구조종합훈련을 참관 중인 내빈들에게 훈련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2.9.28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김 서장은 또 "소방서장이 되면 직원들이 효율성 있게 일하도록 이끌어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서장이 된 지금, 선배급 대원들에게도 '본전 생각하지 말고 시대가 변했으니 후배들을 부드럽게 리드해 달라'고 설득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세대 격차가 느껴진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안 가르치려 들면 후배들은 10년~20년 지나도 전문가가 되지 못한다"며 "업무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고 업무 외적인 부분을 편안하게 해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후배 간 실제로 소통이 되고 친근감이 생겨야만 불편·불합리한 걸 공론화할 수 있다. 선후배 간 소통이 안 되면 밑에서 문제 불거져도 나한테까지 닿지 않고, 그러다가 문제가 커지는 것"이라고 소통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는 유연하지만, 평상시 김 서장의 머릿속은 재난상황과 다를 바 없이 늘 긴장 상태다. 그는 목숨을 잃을 뻔한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 유흥주점 등 다중이용업소 업무를 볼 때는 조직폭력배 등에게 협박을 받아가며 싸우기도 했다.
다중이용업소 업무땐 조폭 등에 협박 받기도 1998년 가구전시장 화재 현장 잊을 수 없어 호흡기 벗겨지는 위험상황에 다른 대원이 구해 '그때의 경험' 동료 돕는 소방관 되겠다고 다짐
그중에서도 1998년 고양소방서에 근무할 때 발생한 가구전시장 화재 현장을 특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1층 단층 건물인 가구전시장의 불이 완전히 진압된 줄 알았는데 건물 한쪽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지휘관의 명령으로 그는 전시장에 재진입해 구석구석 불씨가 남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순간 건물 내부가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탈출하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사력을 다해 탈출하던 그는 가구 더미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산소호흡기가 벗겨졌고, 새까만 연기를 들이마시며 털썩 주저앉았다. 4~5m 앞 출입구 쪽에서 대원들이 오가는 광경도 보이고 무전기 소리도 들렸으나 온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김 서장은 "죽음 직전에 흔히들 그렇다고 하던데 내가 살아온 인생과 부모님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며 "이렇게 죽는구나 싶을 때 나보다 먼저 탈출하던 대원이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내게로 달려와 손을 잡아준 덕분에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곧바로 또 진압에 투입됐던 탓에 김 서장은 자신을 구해준 대원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방관이 되겠노라고 평생 가슴에 새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청사 구석에 쌓여있던 대원들의 상장과 상패 등을 1층 로비에 진열토록 한 김종묵 김포소방서장은 "직원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봤을 때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지역에 이렇게 유능한 소방관들이 버티고 있다는 걸 시민들이 알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김종묵 서장은 직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건강한 소방관이 되길 바라고 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소방관으로 이뤄진 조직이 되게끔 때로는 앞장서서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열심히 응원할 참이다.
김 서장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갭'을 줄여야 하는데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만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후배 간, 계급 간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건강한 소방조직이 될 것이고 그런 관계 속에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면 20~30년 후에 그 후배들은 베테랑 소방관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 소방관 모두 베테랑이 되어야 국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