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포승읍은 국가 주요 산업시설들이 밀집돼 있다. 때문에 '평택의 성장 동력', '산업 집적화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시설은 평택항이다.
평택항은 1986년 국제무역항으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해 현재는 우리나라 4대 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입 1위 항만이며 컨테이너 등 물동량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평택항과 서해안고속도로 인접 지역에는 대규모의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다. 포승국가산업단지, 포승 2 일반산업단지, 포승 BIX 일반 산업단지 등이 들어서 있다.
이들 산업단지의 총면적은 974만4천265㎡로 축구장 1천400여개 규모이다. 산업단지에는 자동차 관련 기업 등과 금속, 기계, 섬유, 화학, 전기 관련 제조업 기업들이 포진돼 있다.
평택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포승읍에 자리한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본부는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을 위한 중요한 국가시설이다.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본부는 40여 년 동안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 왔다. 2020년부터는 모든 발전기를 LNG기반으로 전환해 석탄·석유 발전보다 친환경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8월부터는 포승읍에 설치된 수소생산기지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포승 LNG기지 옆에 조성된 수소생산기지에서 1일 최대 7t의 수소를 생산한다. 포승읍이 대한민국 수소 경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평택항은 1986년 국제무역항으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해 현재는 우리나라 4대 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입 1위 항만이며 컨테이너 등 물동량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평택항과 서해안고속도로 인접 지역에는 대규모의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다. 포승국가산업단지, 포승 2 일반산업단지, 포승 BIX 일반 산업단지 등이 들어서 있다.
이들 산업단지의 총면적은 974만4천265㎡로 축구장 1천400여개 규모이다. 산업단지에는 자동차 관련 기업 등과 금속, 기계, 섬유, 화학, 전기 관련 제조업 기업들이 포진돼 있다.
평택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포승읍에 자리한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본부는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을 위한 중요한 국가시설이다.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본부는 40여 년 동안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 왔다. 2020년부터는 모든 발전기를 LNG기반으로 전환해 석탄·석유 발전보다 친환경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8월부터는 포승읍에 설치된 수소생산기지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포승 LNG기지 옆에 조성된 수소생산기지에서 1일 최대 7t의 수소를 생산한다. 포승읍이 대한민국 수소 경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포승읍은 대한민국의 안보도 책임지고 있다. 포승읍에 위치한 해군 2함대 사령부의 작전해역은 남한 면적의 76%에 달한다.
관할 해역에서 2함대는 해양 우세권을 확보하고, 해안 경계부대와 긴밀히 협조해 북한 침투에 대응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또한 조업 어선들을 보호하는가 하면 특히 서북5개 도서를 운항하는 민간선박의 안전을 위한 호송작전도 실시하며 대한민국 해양 안보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포승읍이 대한민국 산업과 안보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가 깃든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사'다.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에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이를 기념해 수도사에는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을 운영하며 원효의 업적과 사상을 전하고 있다. 또한 포승읍 희곡리에는 포승읍 출신 이대원 장군을 기리는 묘와 사당이 있다.
이대원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활약을 펼쳤다. 적장을 사로잡는 공로를 올리기도 했지만 연이은 왜구의 침입으로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전남 해안에서는 이대원 장군을 모시는 행사가 열리고 있고, 평택에서도 지역 출신의 이 장군을 기억하기 위해 사당이 세워져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포승읍 지역은 조선시대까지 수원군에 소속돼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진위군(현 평택시)으로 편입됐다. 이때 기존의 포내면, 승양면의 전 지역과 안외면 일부를 병합했는데, 포내면의 '포'자와 승양면의 '승'자를 따서 포승면으로 부르게 됐다. 이후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 따라 인구가 증가해 2006년 포승읍으로 승격돼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평택/김종호기자 kik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