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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에서 이주노동자가 방독 마스크 없이 일반 마스크를 쓴 채 농약 살포 작업을 하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1994년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에서 지금의 고용허가제로 이어지기까지.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역사는 어느덧 30돌을 훌쩍 넘겼지만, 산업현장 곳곳에 주요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의 노동환경과 사회안전망 등 여건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이주노동자 썸밧(가명·23)씨는 지난 2019년 고용허가제 E9 비자를 받고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비닐하우스 50개 동의 대규모 채소 농장에서 상추와 청경채가 잘 자라도록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반면 농장에서 일하는 3년 동안 정작 본인의 건강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포천시 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만난 썸밧씨는 옆에 있던 얇은 덴탈 마스크를 손으로 짚었다. 덴탈 마스크는 그가 밀폐된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살포할 때 쓰는 유일한 안전장치다. 그는 "방독 마스크는 받아본 적이 없고 써야 하는 줄도 몰랐다. 그냥 덴탈 마스크만 쓰고 스프레이로 농약을 뿌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밀폐 비닐하우스내 '얇은 마스크'
방독마스크 지급 규정 안 지켜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사업주는 방독 마스크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지급되는 않는 게 상례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가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방독 마스크가 지급되는 농장은 없을 뿐더러 대개 스카프를 입에 두르거나, 일반 마스크를 개별 노동자가 알아서 착용하는 식으로 농약 살포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실제 방독 마스크를 쓰지 않고 비닐하우스에서 7년 동안 농약 살포 작업을 하던 네팔 국적의 게삽(40)씨는 2020년 평택의 한 대학병원에서 불임판정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자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는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자리를 뜻하는 3D에 죽음(Death)을 덧붙여 4D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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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 농약을 살포할 때 사용하는 기구가 경운기에 실려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농약 중독문제로 뒤늦게 피해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현황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실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은 "농약에 중독되면 단기적으로는 두통, 장기적으로는 정자 수 감소나 호르몬 장애를 일으킨다"며 "농약문제를 다룬 기존 연구를 참고해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농약 중독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년간 살포 작업 '불임판정' 받아
'농약 중독 피해' 실태조사 안돼
열악한 환경 '불법 체류' 부추겨

국내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 수는 코로나19로 국제적 이동이 줄어든 시기를 제외하곤 쭉 상승세다.

통계청 '고용허가제 외국인근로자(E9 비자) 도입현황'을 보면 2020년 6천688명, 2021년 1만501명, 2022년 4만2천344명(8월26일 기준)이다. 고용노동부도 중소 제조업, 건설업 등에서의 내국인 구인난이 이어지자 올해 이주노동자 쿼터를 기존 5만9천명에서 6만9천명으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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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가산읍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 썸밧(가명)씨가 거주하는 곳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고용허가제는 국내 기업들이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정부 허가를 받은 외국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으며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해당 제도도입 이전에는 1994년부터 시행한 산업연수생제도가 있는데, 당시 인권 유린 등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근무지를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되는 외국인들이 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2007년 산업연수생제도는 폐지되고 고용허가제로 단일화 됐다.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고용허가제는 현재 쿼터를 늘린 뒤, 내국인이 기피하는 직종에 이주노동자를 투입하며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안전불감증·고용허가제… 중대재해 사망률, 내국인보다 3배 높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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