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슬기작가
경기도미술관 2022 경기작가집중조명 '달 없는 밤'의 기슬기 작가 작품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한 달 중 빛나는 별을 가장 관찰하기 좋은 시기가 '달 없는 밤'이다. 컴컴한 어둠 속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별이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의 별자리로 이어지듯, 다양한 작품 세계 속에서 그것의 주는 의미와 방향, 작가의 시선을 차분히 그려나가 보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경기도미술관의 2022 경기작가집중조명 '달 없는 밤'은 사진, 조각, 설치 등 한국현대미술에서 주목받고 있는 경기지역 중진 작가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전시로, 밤하늘의 별처럼 전시장을 가득 채운 세 작가의 빛나는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기슬기, 기존 사진을 전시된 작품과 촬영
천대광, 어린 시절 기억 담은 '집' 재구성
김시하, 조각들로 쓸모-무쓸모 경계 표현


기슬기 작가는 사진을 둘러싼 여러 특성을 영리하게 겹치고 꿰어내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품 '그것은 당신의 눈에 반영된다'는 인류에게 바라봄의 대상이었던 '달'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진이 실체를 반영하듯, 달은 거울처럼 빛을 반영한다. 기존에 찍은 사진을 전시된 작품들과 다시 찍었고, 그것을 보는 유리에 비친 관객의 모습마저 한 프레임 안에 쌓이며 작품의 일부로 표현된다.

'빛은 인쇄되지 않는다'란 작품은 한지에 먹을 칠한 종이에 빛나는 별들을 찍어 인쇄했다. 사진에는 흰색 잉크가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가려져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데이터 이미지가 깨지는 현상의 규칙성을 발견해 오류를 시스템화한 작품 '시스템', 모니터에 검은 이미지를 재생해 플래시를 터뜨려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먼지와 얼룩 등으로 무한한 우주 공간을 만들어 낸 '검은 빛' 등 작가가 가지고 있던 작품 세계가 한층 더 확장됐음을 느낄 수 있다.

천대광 작가
경기도미술관 2022 경기작가집중조명 '달 없는 밤'의 천대광 작가 작품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천대광 작가의 작품 '사람의 집'은 개인의 기억을 담은 집이라는 공간을 보여준다. 19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가 이뤄지던 시기, 작가는 집에서 문만 열면 주변으로 건물이 지어지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슬래브 건축방식을 쓴 집 모양의 구조물은 작가가 보낸 이러한 어린 시절의 풍경을 담고 있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시간의 조각과 그 안에 담긴 풍경들이 조각조각 집 안팎을 채우고 내부는 기하학적 문양들과 화려한 색들이 조화를 이룬다.

집이 생기면 정성 들여 꾸미게 되는 것처럼 이 집은 물리적이면서도 이상을 담은 공간이다. 각각의 방을 들어갔다 나오고 계단을 따라 2층을 오르내리며, 작품 곳곳에서 마치 소용돌이치는 무수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김시하 작가
경기도미술관 2022 경기작가집중조명 '달 없는 밤'의 김시하 작가 작품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양분화되고 구분된 것의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김시하 작가의 작품 '조각의 조각'은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를 다룬다. 공간에 세워져 있는 여러 조각은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 금속의 파편들이다.

어떠한 재료에서 작품으로 만들어진 조각(sculpture)을 '쓸모'라고 한다면 그것을 잘라낸 이외의 조각(piece)은 '무쓸모'를 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쓸모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찾아낸 쓸모이기도 하다.

작품을 비추는 오묘한 조명은 북극의 오로라처럼 아른거리고, 가운데의 조각들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 의자들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 즉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작품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관객을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와 함께 마지막에 세 작가가 작품을 만든 과정 등을 볼 수 있는 책상이 전시돼 있다. 작은 작업실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서 작가들의 생각을 엿보는 것도 무척 즐겁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