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쳐 최근 일상회복 단계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5만명대에 달하고 있다. 겨울철 감염병 재유행 속에서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은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승희(34) (사)한국국악협회 여주지부장은 "코로나19 대유행, 10·29 이태원 참사 등 나라의 중요한 문제나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된다"며 "비대면 공연이 있다지만 관객의 박수와 함성을 먹고 사는 예술인들에게 관객이 없는 공연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여주 세종국악당에는 뜻깊은 무대공연이 펼쳐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여주시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고자 후원한 '마당극 갑돌이와 갑순이' 상설공연이 6개월의 대장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주시가 후원한 마당극 '갑돌이와 갑순이' 6개월 대장정 마무리
전통시장등 12회 공연, 지역 예술인·상인·시민에 생기 불어 넣어
마당극 '갑돌이와 갑순이'는 1960년대 가수 김세레나씨가 부른 민요에서 '여주땅에 살았다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노래 이야기를 현시대에 맞게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여주 예술인과 예술단체로 구성된 문화체험공동체 '다스름'(대표·김미진, 연출·정수석)이 기획했다.
극의 내용은 여주에 사이가 안 좋은 쌀마을과 도자기마을이 있다. 첫눈에 반한 쌀마을 갑순이와 도자기마을의 갑돌이는 사랑이 싹트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들키고 만다. 둘은 어떻게 마을의 갈등을 해결하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공연이 진행될수록 단연 갑순이의 노래와 연기력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갑순이 역을 맡은 이 지부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김정우(64) 명창의 제자이며 전수자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려 했지만 수혜를 받지 못하는 예술인들이 더 많다. 이번 마당극 '갑돌이와 갑순이'는 지난 6월부터 여주 한글시장과 전통시장 등에서 총 12회 공연돼 지역 예술인과 예술단체는 물론 지역 상인과 시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 민요는 나의 삶과 꿈…'소리는 계단, 끝없이 정진'
경기민요는 민요의 꽃이라고 불린다. 남도민요가 극적이면서 목을 눌러 구성진 저음과 꺾는 음이 특징이라면 경기민요는 소리가 맑고 청아하며 음정이 분명하다.
이 지부장은 "여러 가지 음정을 자유롭게 내야 하기 때문에 전수받을 때 다른 음악에 비해 어려움이 많다"며 "정확한 음을 흔들기도 하고, 흘러내렸다가 밀어 올리기도 하는 '시김새'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목소리의 구성과 기교를 익혀 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로 슬픈 느낌의 계면조 가락보다는 밝고 흥겨운 느낌의 민요가 많다. 모두가 즐기고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경기민요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남도와 달리 청아하고 분명한 음정 특징… '민요의 꽃'이라 불려
소리는 계단… 늘기도 하지만 제자리걸음 할때도 있어 정진해야
대부분 국악인들은 어려서부터 소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지부장은 많이 늦었다. 그가 경기민요를 접한 것은 중3 때 특기적성수업에서 취미로 한 것이 전부다. 고1 때 수업 중 친구들 앞에서 민요를 불러 노래를 들어본 국어 선생님이 전공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해 지금의 스승인 김정우 선생을 만난 것이 시작이다.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제가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했던 때가 고2 때였던 것 같다. 모두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다. 배운지 한 달이 되던 때 경기도 청소년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그리고 2년 만에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에 합격했다."
이 지부장은 지금까지 무난하고 평탄한 국악의 길을 걷고 있어 그것만으로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하지만 실패라기보다는 어느 순간마다 찾아오는 슬럼프가 있다고 말한다.
"소리는 계단이라고 생각한다. 소리가 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제자리걸음을 하듯 발전이 없을 때도 있다. 누구나 거쳐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소리는 끝이 없어서 계속 정진해야 하는 문화예술이다."
■ 여주는 국악의 몸체 '여민락'이 숨 쉬는 곳
이 지부장이 여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스승인 김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과거 여주는 공연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다른 지역에 비해 국악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김 선생은 지역 국악인과 제자들을 모아 2006년 (사)한국국악협회 여주지부를 창립했다. 초대 김정우 지부장과 이승희 사무국장 체제로 여주의 국악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9년부터 이 사무국장이 지부장을 맡아 올해로 4년 임기를 마무리한다.
이 지부장은 "이날치의 '범내려온다', 방탄소년단(BTS)의 '아리랑' 등 많은 예술인이 우리의 국악을 세계로 전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 국악을 알아가고 있다. 여주는 세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곳으로, 세종대왕이 백성과 함께 즐기자는 의미로 만든 '여민락'은 우리 국악의 몸체다. 이런 자부심을 느끼고 여주의 예술인들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을 이뤄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국악협회 여주지부 40여 명의 회원은 올해 제17회 정기공연 '소리에 취해 흥에 겨워'(10월), 취약계층 대상 문화공연(경기도 공모사업), 제3회 여주세종대왕 여민락 전국국악경연대회(11월), 오곡나루축제 참여 등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이 지부장은 하루하루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의 본 직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떼 소속 예술강사로 매일 여주, 이천, 양평 초·중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친다. 또 대학 졸업 후 전영록 소속사에 들어가 1집 앨범 '좋은 게 좋은 거야'를 발표한 뒤 지금도 트로트 가수와 국악창작그룹 '자락'의 멤버로 지난 10월 국악 뮤지컬 '어라연 연가'에도 참여했다.
쉼 없이 달려온 그는 "10년 동안 너무 열심히 뛰어왔다. 지금까지 무난하고 평탄한 국악의 길을 걷게 해주신 김정우 선생님과 가족, 그리고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이제는 좀 정리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좀 쉬면서 챙겨야 할 부분과 앞으로 집중해 나갈 방향을 찾도록 하겠다"며 미소 지었다.
글/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