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까리밤콩, 푸른독새기콩, 쥐이빨옥수수, 호랑이콩. 사람들에게 점차 잊혀져 지역의 일부 농부들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던 토종 씨앗은 우리나라의 환경과 기후 등에 잘 맞는 형질을 가지고 있다.
유전자변형농산물, 수입 종자 등이 상당수를 이루며 매년 새로운 씨앗을 사서 심어야 하는 상황에서 토종씨앗의 존재는 단순히 좋은 먹거리의 존재를 넘어 기후위기와 식량 주권과 같은 세계적 이슈와도 맞닿아 있다.

근래 문화예술계에서도 이러한 토종씨앗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환경이라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엄미술관은 올해 '너-나-토종씨앗(이야기-레시피-맛보기)'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재료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우리 토종씨앗은 어떤 것이 있고, 누가 키울까 등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농부를 초청해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미술관 마당 한 편에 토종씨앗을 심어 작물을 수확하기도 하며 그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기후위기 등 세계적 이슈로 주목
엄미술관, 지역농부 초청 프로그램
'자연 경고' 등 문제제기 영상 제작
엄미술관, 지역농부 초청 프로그램
'자연 경고' 등 문제제기 영상 제작
미술관은 또 사립 박물관·미술관 온라인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으로 '토종씨앗 3부작' 영상을 만들고, 자연의 경고와 식량 고갈, 식량 전쟁 등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질문했다.
이어 "토종씨앗이란 키워드와 중요성, 세계 흐름 등을 예술가의 눈으로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DMZ다큐영화제 대상 '씨앗의 시간'
"상품적 가치로만 따져서는 안돼"
"상품적 가치로만 따져서는 안돼"
제14회 DMZ 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설경숙 감독의 '씨앗의 시간' 역시 토종씨앗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수십 년간 자신의 씨앗을 받아서 심어온 농부의 노동과 시간을 섬세하고 정감있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설 감독은 자본의 가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토종씨앗을 자신의 삶 일부로 소중히 생각하며 일상처럼 지켜온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토종씨앗에 대해 내가 알고 싶어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한 설 감독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이 가지는 역할은 흔히 접하는 설명적 정보나 지성의 호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오늘 먹은 밥상 위의 배추와 무도 매년 씨앗을 받아 심을 수 없게 된 작물이다. 겉으로 보이는 씨앗의 현상이 아닌 그 기저에 깔린 삶의 태도를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토종작물은 소규모, 또는 작은 공동체에서 알음알음 팔리고 있는데 그런 시장경제도 가능하다. 상품으로서 가치만 따지는 것이 아닌, 그 삶의 방식을 더 가치 있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사고의 전환을 강조했다.
결국 미술관과 다큐멘터리 영화 등의 문화예술가들이 토종씨앗에 주목한 것은 오늘날 씨앗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데 공통적인 목적이 있었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문화예술과 만난 '토종 씨앗')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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