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경제의 시선이 '토종 씨앗'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어냈지만, 문화예술의 눈을 통해 본 '토종 씨앗'은 우리 사회가 짚어봐야 할 하나의 주제가 됐다. 여기에 개인과 사회적 기업 등의 노력이 합쳐져 '토종 씨앗'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식량기업 중 하나인 몬산토가 2002년 인도에 판매한 Bt(해충 저항성) 면화가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얼핏 관계 없는 일 같지만, 몬산토의 면화가 더 많은 농약을 사용하게 했고 그만큼 농민들이 빚을 지면서 생긴 문제였다. 이 밖에도 세계 식량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이용해 종자를 독점하고 있어 농민의 생산권을 제한하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개인이나 사회적협동조합 등은 종자를 무기로 벌이는 전쟁터에서 내려와 토종 씨앗을 발굴하고 지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면서 토종씨앗의 의미를 함께 전파해 경제적·문화적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앉은뱅이 밀이다. 한국 토종 밀로 기원전 300년부터 재배한 종인데, 미국의 농학자이자, 197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노먼 볼로그가 개량해 멕시코 등에 보급했다. 볼로그의 노벨 평화상은 식량 증산에 기여한 공로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토종 밀이 미국에 노벨상을 안긴 셈이다.
상업적 성공·동화 출판 다양성 전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값싼 수입 밀이 들어오고, 1990년대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잊혔다. 다시 앉은뱅이 밀이 주목을 받은 것은 2012년 '토종곡식'의 저자 김석기 작가가 진주의 한 정미소에서 앉은뱅이 밀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다.
재발견 과정에서의 극적 이야기에 힘입어 앉은뱅이 밀은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동화책으로 출판돼 초등학생들에게 생물 다양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토종씨앗을 단순히 식량문제로만 다루지 않고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곳도 있다. 2008년 설립된 '토종씨드림'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전국귀농운동본부, 연두농장, 흙살림, 한국토종연구회, 환경농업연구회, 농어촌사회연구소 등이 소멸되는 토종씨앗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민간단체다.
철학으로 확장·씨앗도서관 대중화도
이들은 각 지역에서 지역별 특성에 맞게 토종씨앗 수집에서부터 증식, 활성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설립 이후 강화, 여주, 가평, 포천, 안성, 화성, 양평, 용인, 평택을 비롯해 전국 28개 지역에서 180여 작물 7천800여점을 수집해 보존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육을 진행하면서 토종씨앗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만들고 있다. 토종씨앗이 상징하는 종의 다양성이 만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맞닿아있다고 보고 '씨앗철학'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아울러 광명과 수원, 안양 등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씨앗도서관은 토종씨앗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토종씨앗을 원래 심었던 지역에서 심으면 좋겠다는 판단으로 설립된 씨앗도서관은 토종씨앗을 책처럼 빌렸다가 농사에서 거둔 토종 씨앗들을 다시 반납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는 "토종씨드림이 15년 넘게 활동하면서 토종씨앗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는 것을 느낀다"며 "토종씨앗은 단순히 식량, 종자 등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적인 많은 내용을 포함한다. 잃어버린 옛것을 찾아 새것과 융합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씨앗철학'을 확산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