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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양으로 술을 먹는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술을 즐기는 문화가 돼야 한다."

지난달 26일 평택생명농업센터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명주대상'에서 심사위원과 특별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BTS 진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밝힌 전통주에 대한 소신이다. 그렇다면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기법으로 술을 빚는 것만이 전통주를 지키는 것일까.

이는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 MZ세대를 사로잡아야만 진정한 K-전통주로 불릴 수 있다.

평택시 오성면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좋은술'은 대통령 만찬주와 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갖고 있다. 또 지난 11월 경인일보가 주최한 '2022 경인 히트상품'에서 기업체부문 금상(주류)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설립 10여년 만에 대통령 만찬주 등 명성
다섯번 발효 오양주 현대화 '천비향 약주'
지역쌀 '참드림' 사용 수개월간 저온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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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령 좋은술 대표는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명품 막걸리 등 전통주에 환호하는 MZ세대를 사로잡는 새로운 누룩을 만들어 색다른 K-전통주를 선보이고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좋은술'이라는 이름처럼 이예령(57) 대표가 빚은 오양주 '천비향'과 삼양주 '택이', 색이 있는 막걸리 '술예쁘다' 등 탁주부터 약주와 화주, 증류주까지 향이 좋고 풍부한 맛으로 입소문이 났다.

농업회사법인 '좋은술'은 설립 10여년의 역사가 짧은 회사다. 2012년 한국가양주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전통주학교 과정을 이수한 이 대표 등이 공동출자해 이듬해인 2013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의왕에 있던 양조장도 2017년에 이 대표의 집이 있는 평택으로 옮겨 오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술은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잘 섞어 한 십여 일이 지나면 술이 완성되는데 '천비향 약주'(도수 16%)는 이러한 발효과정을 다섯 번 거친다. 이런 발효과정을 거친 오양주인 천비향 약주는 그만큼 정성을 많이 들인 술이다.

천비향 약주는 인공감미료나 화학조미료와 같은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가장 최근에 도정한 평택쌀과 누룩, 정제수, 밀로만 만들었다. 직접 손으로 3개월간 빚어내고, 3개월 이상 저온 숙성을 거쳐 배꽃향과 누룩향이 어우러진 깊고 풍부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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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비향 약주'는 5번의 발효과정을 거쳐 빚어진 오양주다. 사진은 발효과정의 누룩.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이 대표는 천비향 약주를 빚을 때 가장 중요한 재료로 쌀을 꼽았다. 평택 지역에서 재배한 가장 품질 좋은 쌀인 '참드림'으로만 빚는 술이 바로 천비향 약주다.

이 대표는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숙성 과정을 철저히 지켜야 하고 술을 빚는 쌀과 누룩 등의 원료 품질도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며 "평택에서 생산되는 쌀은 토질, 기후, 재배품종, 재배방법, 수확, 건조, 저장 및 건조 등 미질을 좌우하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술을 빚기엔 최고"라고 평가했다.

전통술은 누룩 상태와 발효 온도에 따라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술은 발효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바닥에서 발효통을 10㎝ 정도 띄우고, 온도는 평균 24℃, 습도는 40% 내외를 유지한다.

이 대표는 사라진 가양주 가운데 오양주를 현대 방식으로 재현하고 상품화에 성공했다. 천비향은 알코올 도수 14도인 생주와 16도인 약주 제품이 있다. 그리고 3개월 발효, 3개월 이상 저온숙성을 거친 오양주 '천비향 약주'를 증류해 1년 이상 숙성한 '천비향 화주'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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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인 '좋은술'은 전시된 상패를 통해 '2022 경인 히트상품'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엿볼 수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사실 최근 고급 막걸리 붐이 일면서 이른바 K-전통주를 찾는 젊은 층이 많이 늘었지만 불과 이 대표가 처음 양조장을 시작했을 무렵인 10여년 전만 해도 막걸리(약주)는 싸구려 술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좋은술'은 전통주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부담 없는 가격과 맛,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까지 2030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천비향에 이어서 알코올 도수를 8도까지 내린 '택이', 빨간색을 띠는 '술예쁘다' 등의 막걸리를 선보였는데 '술그리다'와 '술예쁘다'는 10월9일 한글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술로 알코올 도수도 10.9도다.

이름도 순우리말이다. 비교적 낮은 도수와 이색적인 라벨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좋은술은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여성 고객이 70~80%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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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또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누룩을 만드는 것에도 집중한다. 밀 누룩 전문 누룩업체 '송화곡자'의 것을 쓰고, 이화곡(맵쌀 누룩)과 홍국 누룩(붉은 쌀누룩) 등 쌀누룩은 직접 만든다. 쌀누룩을 띄울 때는 미생물 발효를 활성화하기 위해 평택에서 나는 쑥과 풀, 무궁화꽃을 넣는다.

증류 과정 무궁화 넣어 은은한 향 가미도
저알콜 '택이' 막걸리 '술예쁘다' 등 선봬
전통주 활성화 위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


전통주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전통주 강의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 이 대표는 2019년에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면서 체험객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져 마케팅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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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술'에서는 전통주뿐만 아니라 술지게미로 잼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전통주 만들기, 술지게미 잼 만들기, 술거르기(채주), 누룩 소금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하고 '좋은술 특별 마리아주 한상차림' 등의 식사도 가능해 반응이 뜨겁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개발한 것이 무궁화주다.

무궁화꽃으로 술을 담글 수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봤지만 무궁화주를 상품화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무궁화를 식품 원료로 쓰지 않아서 수급 자체가 어렵자 지난해부터 유리온실을 빌려 유기농으로 무궁화 300그루를 재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무궁화꽃을 말려서 오양주를 만들고 증류할 때 넣으면 술에서 무궁화꽃 향이 은은하게 난다"며 "무궁화꽃으로 잼과 떡을 만들고, 무궁화묵 등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 거예요. 술지게미 등 원료를 활용한 간편식과 밀키트 등 가공 상품을 개발할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앞으로도 정말 맛있고 멋진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체험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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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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