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전력시설물 설계·공사감리 분리발주를 명문화한 전력기술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건축 등과 통합해 발주하던 전력시설물의 설계·공사감리 용역사업을 별도로 분리해서 발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마련된 것이다. 이는 전국 100만 전기산업 종사자들의 염원이자 한국전기기술인협회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 건축사사무소에서 도급받아 업무를 수행하던 전국의 전기인들은 용역비 지연 및 업무적 제약 등 갑을관계에 따른 부당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크게 환영했다.
법안 통과 후 김선복(64·서전일렉스 대표이사) 한국전기기술인협회 회장은 "일선 현장에서 우리 전기인들이 겪는 아픔이 느껴져 책임감이 무거웠다"며 "협회가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구나 싶어 뿌듯했다"고 분리발주 법안 추진과정을 회고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해온 전기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해주고 심도 있게 검토해서 발의해준 신영대 국회의원께도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전까지 시공 분야에서는 전기공사(전기공사업법)·소방(소방시설공사업법)·통신(정보통신공사업법) 모두 분리발주 규정이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분야인 전력시설물 설계·공사감리 분야는 그렇지 않았다. 전력기술관리법은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전력시설물의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는데 명문화한 규정이 없어 전력시설물 설계·공사감리 용역은 분리발주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력시설물은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하도급 형태로 진행됐고, 이는 저가수주 경쟁과 공사품질 저하로 이어져 하자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불거졌다. 하지만 처벌규정도 마땅히 없어 책임소재가 불분명했다. 이에 한국전기기술인협회는 지난 2013년(19대 노영민 의원·이하 대표발의)와 2017년(20대 홍익표 의원) 법제화도록 노력했으나 회기 종료 등의 이유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력시설물은 그동안 건축 등과 통합해 발주
품질저하·공사하자 생겨도 책임소재 불분명
분리발주 법안, 국회 못 넘다가 마침내 '결실'
협회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쟁점사항이던 분리발주 범위 등을 수정, 지난 2020년 11월 신영대 의원을 통해 다시 도전한 끝에 국가 전체의 안전문제와도 연결된 분리발주 성과를 최근 얻어냈다. 개정안 공포 1년이 경과하는 내년 11월 16일부터는 발주자가 공고(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규정된 사업은 계약)한 전력시설물의 설치·보수공사부터 설계·공사감리 분야에서도 분리발주가 적용된다.
협회는 해당 법안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 분리발주 적용범위를 정부와 충분히 논의하는 한편, 하위법령 정비에 세심하게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김선복 회장은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연결되는 체계적인 분리발주시스템을 구축해 전력시설물의 설계·감리 품질과 현장 안전이 담보되도록 협회는 앞으로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분리발주 법안이 본격 시행되면 지금껏 통합발주에 익숙했던 발주자들이 불편을 호소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특히 예외 허용과 관련한 대내외적 요청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 문제는 올해 2월 한국건설경영협회가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 확대' 안건을 놓고 소방청장과 면담한 사례, 전기공사업법 시행령에 명시된 '전기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를 모법인 전기공사업법에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사례에서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선복 회장은 "협회는 전력기술관리법의 입법취지에 맞게 분리발주 예외규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자의적 해석으로 통합발주가 확대되는 일을 방지하고 관련 민원을 최소화, 어렵게 통과된 법안이 제대로 현장에 적용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 업계는 '품질·경영 개선'…기술인은 '위상·책임 UP'
부실공사·안전재해 방지 효과적
27일 한국전기기술인협회에 따르면 전기를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설계부터 시공·감리·검사·준공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준비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설계와 감리 역시 국가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필수단계라 할 상황에서 이번 분리발주 법안 통과는 다양한 전력시설물 공사현장의 안정성 확보에 더해 설계·감리 수행업체의 기술인력 지위 향상과 경영 개선 등의 효과가 클 것으로 협회는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설계용역은 하도급일 경우 고시금액의 25~50% 선에서 대가가 책정되는 데 반해, 직접발주 시에는 고시금액 대비 약 95% 이상 적정 대가를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발주는 '저가 수주 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갇혀 추가적인 저가경쟁이 발생, 기술력·인력·품질 등의 저하가 불가피해 용역비가 삭감되고 설계·감리 업계에 적정 능력을 보유한 인력 유입을 방해하고 있다.
김선복 회장은 "분리발주 시행으로 이런 문제가 해소되면 부실공사나 안전재해 방지에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고, 적정대가 지급으로 인해 전력시설물 설계·감리의 품질과 전기인들의 위상·책임이 동시 상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행시장의 활성화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대행 대가 산정 반드시 필요
협회는 분리발주에 이어 업계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할 현안으로 '전기안전관리법'과 '정보통신공사업법'을 꼽는다.
'대행 대가' 법제화를 내용으로 하는 전기안전관리법(이장섭 의원 관련발의)은 전기안전을 관리하는 대행업계의 염원으로, 대행사업자 간 저가경쟁에 따른 안전관리업무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시된 금액이 없다 보니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거나, 계약 후 며칠 만에 타 업체와 새로 계약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대행업체와 전기설비소유자 간 분쟁이 빈번한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정보통신공사업자만 통신용역 업무를 수행토록 한 정보통신공사업법(김정호 의원 관련발의)은 기존에 전기업계에서 해오던 업무에 대한 침해 및 업력 축소가 우려되는 사안으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선복 회장은 "전기설비 안전확보와 대행시장의 활성화,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대행 대가 산정(금액 고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기 기술인들의 역량 강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한국전기기술인협회는 안양시 소재 중앙교육관에 이어 지난 8월 부산에 영남교육관을 성공적으로 준공하고 호남과 충청지역에도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용 교육관이 거점별로 조성되고 나면 기술인들이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김선복 회장은 "더 많은 회원이 다양한 방면에서 발전하도록 선도하는 진취적인 협회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