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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월미도 해안으로 상륙하고 있는 미 해병대원들. /경인일보DB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는 올해 경인일보는 전쟁, 그리고 정전과 관련한 연중기획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한국지방신문협회와 공동으로 연재하는 '한국전쟁 정전 70년-한신협 특별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와 경기도의 '전쟁·분단 관련 문화유산'을 주제로 우리가 몰랐던 일상 속 전쟁·분단의 유산을 살펴보고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이 그 주인공이다.

경인일보는 신년호를 통해 대기획의 프롤로그를 공개하고, 대장정의 서막을 알리고자 한다.
→ 편집자 주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발발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중단됐다. 1천129일 동안 300만명의 사망과 실종자를 낸 동족상잔의 비극은 남과 북을 갈라놓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마침표'(.)가 아닌 '쉼표'(,)만 찍어놓고 여전히 대치 중이다.

이렇게 70년을 맞은 정전(停戰)의 시간, 그 물밑으로는 어떤 역사가 흐르고 있을까. 지역 대표 언론 9개사가 소속돼 있는 한국지방신문협회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독자들과 함께 '끝나지 않은 전쟁'을 주제로 한국전쟁의 상흔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억'의 공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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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알려지지 않은 전쟁 뒷이야기
조국·자유 희생 영웅의 숨소리
■ 그 첫 번째 여정은 '쉼표(,)'다. 한반도가 포성에 휩싸인 1950년 6월25일부터 포성이 멈춘 1953년 7월27일까지 수많은 젊은이가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희생으로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한국전쟁 첫 승전 전투인 '춘천 대첩',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대전 전투', 임시 수도 부산을 지켜낸 '마산방어 전투', 대한민국을 구해 낸 '낙동강 전투', 한국전쟁의 분수령 '인천 상륙작전', 그리고 정전을 앞두고 처절하게 치러진 최후의 전쟁 '백마고지 전투'까지….

마산진동리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마산 진동리 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부대원들의 모습. /마산방어전투 기념사업회 제공

1950년 9월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불리했던 전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견되는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은 유엔군으로 알려졌으나, 그 직전 인천 영흥도 일대에서 상륙을 위한 첩보작전을 펼치다 전사한 한국 해군 첩보부대원 9명의 희생이 있었다.

'쉼표'는 전장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조국과 자유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숨소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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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망·부상·실종 99만명
왜 죽었는지 가해자는 묵묵부답

■ 하지만 전쟁은 영웅들의 이야기만 만들어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전장이 아닌 집에서, 마을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야만 했다. 왜 무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가해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알려지지 않은 그 피해는 상당했다. 그래서 두 번째 여정은 '물음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사망과 부상, 실종은 9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엔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인천 월미도 일대에서 희생된 100여명의 마을 주민은 인천상륙작전의 기념비적 승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은 1950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일어나 최소 1천800여명에서 최대 7천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전남, 전북, 경남, 제주에서는 정부와 경찰이 죄 없는 민간인들을 좌익으로 몰아 살해한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자행됐지만, 희생자 수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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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오늘 다시 반추
후세는 다시 시련 없게할 책무

■ 세 번째 여정은 '말줄임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기록해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을 후세에 연결해 주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세계전쟁사에 기록돼 있는 인천상륙작전을 오늘 다시 반추하고, 국립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전사들을 다시 떠올리며, 마산만 전투와 춘천대첩의 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모두 후대에 역사로 전하기 위함이다.

전 국토의 10%만 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 일명 '워커 라인(Walker Line)'을 기점으로 한 낙동강 전투다. 이곳에서의 승리로 국군과 유엔군은 대반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낙동강 전투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사실상 거의 없다. 낙동강 전투의 의미와 기념사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기간 1천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던 부산에는 당시 정부청사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픈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게 똑같은 시련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또 다른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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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산하에 묻힌 순국선열
한신협과 함께하는 새로운 여정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인근에는 백암산을 바라보며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쓴 10여 개의 '비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1964년 어느 날 화천군 백암산에서 수색대 소초장으로 근무하던 젊은 소위가 백암산 계곡에서 봤던 돌무덤과 이끼 낀 나무비(碑)를 떠올리며 만든 가곡 '비목'의 탄생지이다.

백암산은 1953년 6월부터 정전협정이 이뤄진 7월 사이에 벌어진 금성 전투의 핵심 전투이자 강원도 화천 백암산을 사수하려는 국군 5사단과 8사단, 6사단 7연대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고지전을 벌이며 피로 지켜낸 전장이다.

이곳에서 쓰러져간 국군 장병들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습되지 못해 돌무덤 밑에 남겨졌거나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방치되기도 했다.

서귀포 부녀회원 훈련병 주먹밥 배급
1953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백사장 항만대에 도착한 훈련소 입영 장병들에게 대정읍 부녀회원들이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웅철씨 제공

나라의 부름에 꽃 같은 젊음을 바친 비목의 주인이 꿈꿨던 모습은 어땠을까? 이름 모를 산하에 묻힌 선열들과 우리가 희망하는 정전의 쉼표(,)가 종전의 마침표(.)로 그리고 끝내는 통일 한반도에 한민족의 기쁨과 환희로 물결치는 느낌표(!)가 가득 찬 모습을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을 '기억'으로 향하는 여정에 초대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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