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은 '흙'… 맛을 알면 재벌집 막내아들급 대우
토하(土蝦)는 말그대로 흙새우다. 1급수의 청정 민물에서 다 자라봐야 3㎝ 정도인 갈색의 이 새우는 주로 젓을 담가 먹는다. 우선 토하를 잘게 다진 후 천일염으로 염장한다. 숙성과정을 거친 뒤 고춧가루·마늘·생강 등 갖은 양념에 찹쌀죽을 넣으면 비로소 토하젓이 완성된다.
토하젓은 예로부터 고급 식재료였다. 남도한정식에도 종지그릇에 작은 티스푼 한 숟가락 정도가 놓인다. 밥 위에 올려 쓱 비벼 입에 넣으면 오돌토돌 씹히는 민물새우의 달콤·고소함과 양념의 짭짜름한 맛이 입안에서 섞이며 탄식이 나올 정도다.
농약 단 한방울만 들어가도 살아남지 못해
첩첩산중 산골 서식지 필수 요건중의 하나
숙성 거쳐 양념으로 무친 '젓' 고급 식재료
남도 한정식도 종지에 티스푼 정도만 놓여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유의 흙냄새 '포인트'
전남에서는 특히 강진 토하의 명성이 자자하다. 강진은 동·서·북 삼면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비교적 높고, 남서쪽에는 강진만이 있다. 탐진강과 그 지류인 금강, 이외에도 동남류하는 강진천과 도암천, 서남류하는 칠량천과 대구천이 있다.
강진에서는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어느 집 밥상에서나 쉽게 맛볼 수 있을 만큼 흔한 반찬이었다. 1970년대 들어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명분하에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늘면서 토하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농약 성분이 전혀 없는 맑은 물에서만 사는 토하를 양식하는 곳이 있다. 강진군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옴천면이다. 장흥과 영암의 경계에 자리하면서 월출산, 생금산, 깃대봉, 봉황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월곡저수지에서 발원한 옴천천이 면 전체를 휘감고, 그 지류들이 다섯 갈래로 면 곳곳을 적신다. 이러한 깨끗한 자연이 토하를 길러내는 것이다.
12월 토하잡이가 한창인 옴천면 현장을 찾았다. 옴천면은 약국, 미용실, 문방구, 편의점 등이 단 한 곳도 없다. 식당도 옴천식당 하나뿐이다.
국가통계포털 코시스(KOSIS)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옴천면 인구는 604명이다. 전남에서 영광군 낙월면 4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적다. 전국에서도 네 번째다. 이 정도는 돼야 토하가 자란다. 강진의 지형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알파벳 A와 비슷한데, 옴천은 A의 꼭지점에 있다.
강진에서 가장 오래 토하를 잡고 있는 '청자골 옴천토하젓' 김동신 대표의 서식장은 옴천에서도 한참 더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옴천면사무소에서 옴천영산보건진료소 방면으로 장강로를 타고 가다 좌측에 있는 동적제 인근에 있다. 해발 180m 지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중턱 서식장으로 가는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적다. 길 중간에 철제 출입문이 있는데 서식장에 도착하면 철제 펜스를 또 마주해야 한다. 그야말로 철통보안이다.
외부인의 출입을 이렇게까지 통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토하의 특성 때문이다. 토하는 먹이사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잠자리 유충이나 물방개와 같은 수서곤충, 같은 새우류인 징거미에게 잡아 먹힌다.
하지만 토하의 진짜 천적은 농약이다. 단 한 방울의 농약이 있어도 살아남지 못한다. 생활하수나 축산 폐수가 조금만 흘러들어도 자취를 감추는 게 토하다. 그래서 첩첩산중 두메산골은 토하 서식지의 필수 요건 중 하나다.
김동신 대표는 "토하는 1급수가 아니면 살 수 없다. 1급수는 사람이 바로 떠다 먹어도 탈이 없다"면서 "지역에 토하가 산다는 건 축복받은 환경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고 전했다.
깨끗한 수질 이외에 웅덩이의 수심도 중요하다. 웅덩이의 깊이가 너무 낮으면 빛의 투과율이 높아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자정능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물이 깊으면 관리가 어렵고 수압이 높아 기자재 운용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양식장마다 적정 물 깊이를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하 웅덩이의 적정 수심은 1.5~1.8m 정도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채집 장비를 갖추고 330여㎡ 남짓 웅덩이에 성큼성큼 들어간다. 아무리 방한·방수복을 입었더라도 12월의 살얼음 낀 저수지의 추위는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토하 서식지에서만큼은 '혹독함의 계절'은 곧 '잉태의 계절'로 다가온다. 토하잡이는 11월 중순 진서리 내릴 때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절정이기 때문이다.
웅덩이에 담가 둔 신우대를 들어 올려 소쿠리에 털자 싱싱한 토하가 퍼덕인다. 허리, 가슴까지 차는 수심에 자칫 넘어질 수 있지만 기우다. 능숙한 발걸음과 익숙한 손놀림에 22년 토하잡이 내공이 전해진다.
김동신 대표는 "2~3㎝ 크기의 토하 한 마리가 300원쯤 한다. 토하를 팔아 자식 교육과 결혼까지 시켰다. 토하가 8할은 했다"고 말했다.
토하는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고, 물만 깨끗하면 알아서 크니 사업적으로 매력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토하 사업을 하면서 '잡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안착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면서 "동백나무 가지로 잡은 토하를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진 칠량에서 토하를 잡고있는 윤대식 '강진토하젓' 대표의 회고다.
윤 대표는 사업 초창기에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토하의 생태나 습성에 어두워 웅덩이 조성 공사만 다섯 번을 했다. 땅을 파고 다시 덮는 일이 반복됐다. 토하 잡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숙제였다.
예부터 전해오는 전통 방식을 찾기 위해 섬진강을 비롯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전통 방식을 고스란히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한 윤 대표의 긴 여정이 이어졌다.
토하의 습성부터 다시 공부했다. 토하는 주로 물속에 잠긴 나무의 잎에서 서식한다. 나무 이파리가 곧 토하의 아파트다. 토하는 겨울에 잡기 때문에 겨울에도 잎이 있는 나무가 필요했다. 그게 동백나무와 대나무였다. 마침 주변에 동백나무도 많았다.
여기에 직접 고안한 채집 도구를 더해 지금은 과거보다 수월하게 잡고 있다. 지역에서 잡힌 토하는 토하젓으로 가공,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 강진 토하젓의 맛은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유의 흙냄새가 포인트다.
미식가로 유명한 소설가 황석영은 토하젓을 맛본 뒤 "젓갈이 콤콤하겠지 같잖게 향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가 난다"고 산문집에 기록을 남겼다.
모든 음식과 마찬가지로 토하젓 역시 재료의 비율이 중요하다. 토하젓 생산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토하 50%, 소금 20%, 양념 30% 정도다.
벼농사와 비교 시 같은 면적당 토하젓 순이익이 훨씬 높다. 1천㎡ 기준으로 벼를 재배했을 경우 생산량 17.2가마에 순이익 53만원이 발생하는 반면, 토하의 경우 14.2㎏ 생산에 203만8천원의 순이익이 남는 것으로 분석된다. 약 3.8배 소득이 높은 셈이다. 생산비용 대비 순이익이 높지만, 생산량 제고와 판로 확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강진군은 지역 대표 특산물인 토하 서식장을 점차 확대하고, 2024년까지 옴천지역을 토하 특구로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광주일보=윤현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