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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빛·아름다움의 회상' 전시 모습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빛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빛깔의 아름다움이 가장 고상한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니체)

화성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고요한 빛· 아름다움의 회상'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주춧돌이 된 예술가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들을 새삼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에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사람들의 삶에 미디어가 자리 잡은 오늘날, 예술가들의 유산과도 같은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해 사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는 마음이 바탕에 있다.

전시작품은 모두 엄미술관의 컬렉션이며,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미술의 블루칩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7명 작가의 작품 30점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자유로운 시대 정신과 예술 의지로 변화와 도전을 갈망한 그들의 강렬한 창작 의지가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미술 세계에 우리나라 알린 예술가 7명 30점
추상적 표현 독특한 콜라주 구현 '남관' 눈길
수채화가 장르의 일인자 배동신 '무등산'도


작고한 작가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미술관은 벽면을 활용했다. 후배 작가들이 직접 하얀 벽에 소개 글을 쓰고, 그들의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어떤 숭고함과 경건함 같은 감정들이 퍼졌다.
 

추상적 표현의 형태를 독특한 작업으로 구현한 남관의 작품은 콜라주 형식으로 종이를 뗐다 붙였다 하며 마치 글자 같기도 하고 도형 같기도 한 독특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그는 한국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체험한 것에서 비롯한 정신적 표현 의지와 상징성, 시간과 공간, 역사의 표상을 작품에 담았다.

반복적으로 겹쳐진 반점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펼쳐지는 곽인식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평면의 캔버스 위에 못, 쇠, 유리, 바둑돌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사물이 주는 물질성과 내면을 담아내려는 작업을 시도했다.

1970년대 들어 화지의 질감에 관심을 갖게 된 곽인식은 화지 위에 원형의 반점들을 일정한 규칙 없이 겹치도록 표현했다. 종이의 물성과 존재하는 사물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는 작품은 다양한 색채의 점이지만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종이 위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채화가의 일인자로 불리는 배동신은 일생을 수채화만 그려내며 수채화를 회화의 장르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주로 작품에 풍경을 담은 그는 무등산을 많이 그렸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그가 그린 무등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또 자화상과 여성의 누드화 등 배동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작품들도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특유의 붓 터치와 미묘하게 변화하는 색감으로 한국적 느낌을 담아내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오지호, 상징적인 인물상의 현대적 화면을 창조해낸 김영주, 감각적이고 세련된 추상화면에 전통적 모티브를 이용한 이세득, 한국인으로 처음 파리 유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며 미술계에 영향을 끼친 이종우 등 우리나라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가들의 작품이 천천히 오래 걷는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한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