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와 책들이 즐비한 파주출판단지에서 처음 만들어진 갤러리, 미술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15년간 자리를 지켜온 갤러리박영의 특별전 '두레문화 박영 70'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박영의 뿌리인 출판사 '박영사'의 70주년과도 맞물리며 특별함을 더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혼란과 상실의 시기를 겪었던 국민들에게 책은 문화와 지식을 전달해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농촌의 공동 노동체로 주변의 이웃과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문화인 '두레'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이끌어낸 이유는 이러한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의 사명감 또는 책임감의 바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박영사'의 오랜 역사 기려
이동춘 사진작가, 고서로 작품 제작
창업자 故 안원옥·안종만 現 회장
해외 미술품 등 소장 컬렉션 선봬
전시의 시작을 이끈 것은 이번 특별전을 위해 갤러리와 공동작업한 이동춘 사진작가의 작품이었다. 안동의 종가와 고택을 위주로 작업한 이 작가는 박영사에서 출판한 책들로 작품을 만들어 냈다.
작품 '박영의 역사'에서는 헌책방에서 찾은 박영사의 고서들이 세월을 말해주듯 차곡히 쌓여 있고, 책들 위로 훈민정음 해례본 일부와 언젠가 주인이었던 이들이 책 안에 남긴 글씨들도 함께 펼쳐져 있다. 시간의 흐름과 그것을 머금은 고서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박영사의 창업자인 고(故) 안원옥 회장과 현재 안종만 회장의 소장품들로 채워졌다. 고 안원옥 회장이 고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심전 안중식, 소치 허련, 청전 이상범의 작품 등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또 '소전체'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만들어내고, 일본에 반출됐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되찾아 온 것으로도 잘 알려진 소전 손재형의 작품도 있는데, 박영사의 초기 로고를 써준 그와의 인연도 엿보인다.

안종만 회장의 컬렉션에는 역시 책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다양한 색감이 매력적인 도서관의 모습을 담은 칸디다 회퍼의 작품은 사람이 다니는 공공장소에서 사람의 흔적을 쫓고, 대칭성과 그 디테일을 강조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원근법과 역원근법을 이용해 시선의 이동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패트릭 휴즈의 'Reading', 버려진 책들을 쌓아 종이를 하나의 목재처럼 만들어 조각하는 롱빈첸의 'India Buddha' 등 책이 중심 되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안 회장이 직접 토마스 엘러에게 의뢰해 만든 작품 'The bounty'는 박영사에서 출판한 경영전략으로 제작됐다. 확대된 사물로 3차원의 공간을 구성해 평면을 뛰어넘는 입체감을 보여주는 작가가 납작한 책 표지를 광고처럼 반복하고 겹쳐놓은 이 작품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속에 아직도 유효한 책 속에 담긴 경영전략이 가지는 의미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책이라는 토양에서 함께 자라난 미술문화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