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 최북단 섬인 인천 옹진군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주민들이 4시간이 넘게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1인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2021년 봄의 일이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백령도, 대청·소청도를 오가는 연안여객선 항로에 대형 카페리선을 도입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백령·대청·소청도를 오가는 항로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제주 항로 다음으로 먼 뱃길이다. 항로가 길어 안개 등 기상상황에 따라 섬 주민들의 대중교통 역할을 하는 연안여객선이 운항하지 않는 날이 많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고 조업을 준비해야 하는 한창 바쁜 봄에 섬 주민들이 생업을 모두 제쳐놓고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다.
섬 주민들의 간절한 외침에도 현재 이 항로의 사정은 더 나빠졌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백령·대청·소청도 항로를 오가는 유일한 2천t급 카페리선이 조만간 운항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시와 옹진군,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 관계기관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백령·대청·소청 항로에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선박은 '하모니플라워'호(2천71t)가 유일하다. 1998년 만들어진 하모니플라워호는 해운법에 따른 선령 제한(25년)으로 올해 6월부터 운항하지 못한다.
옹진군은 2020년부터 하모니플라워호의 대체 카페리선을 구하기 위한 공모를 추진했다. 3차례 공모에서 운항 선사를 찾지 못한 옹진군은 4차 공모에서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한 에이치해운과 2021년 12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백령 항로 대형 여객선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에이치해운은 하모니플라워호를 운항하는 선사다.
2400t급 신규 도입… 선사 문제로 작년 협약 취소
농수산물 육지 운반·식료품 운반 비용 상승 우려
옹진군은 이 항로에 대형 카페리선을 투입할 선사를 찾고 있지만, 현재는 관심을 나타내는 선사가 없다. 하모니플라워호가 운항을 하지 못하면 이 항로에는 여객만 승선할 수 있는 선박 2척만 남게 된다.
옹진군과 인천해수청은 이 항로에서 1천600t급 여객선을 운항 중인 선사인 고려고속훼리에 대체 선박 투입을 요청, 하모니플라워호의 운항 중단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고속훼리가 운항할 수 있는 대체 선박은 하모니플라워호와 비교하면 크기가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바다 날씨에 따라 운항을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하모니플라워호의 운항 중단은 주민들의 생업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백령·대청·소청도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생산한 농·수산물을 카페리선에 실어 육지로 운반하고 있다. 카페리선이 운항을 중단하면 주민들은 차량 적재가 가능한 화물선으로 운송해야 한다.
하지만 인천항과 백령도를 오가는 화물선은 주 3차례만 운항하는 데다, 편도로 13시간이나 걸린다. 카페리선보다 운항 시간이 길어 주민들은 섬에서 고생해서 잡은 수산물을 살아있는 상태로 운반하지 못하고, 냉동과정을 거쳐 육지로 옮겨야 한다. 육지에서 섬에 들어오는 식료품 운반 비용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섬 주민들은 걱정한다.
'서북3도 이동권리 추진위원회' 심효신 위원장은 "지금도 기상상황이 나빠져 3~4일 연안여객선이 운항하지 못하면 표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에는 더 심해질 것 같다"며 "그나마 카페리선이 있어 신선도가 중요한 농·수산물을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민들의 부담만 커졌다"고 토로했다.

고유가로 인해 국내 연안여객선사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어 신규 항로에 투자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규 선박을 건조하거나 중고 선박을 구매하려면 금융권에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금리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선사들은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안여객선 업계에선 오는 2027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백령공항' 건설 사업도 선사들에겐 부담이라고 한다. 한 연안여객선사 관계자는 "백령공항이 건설되면 선사들의 매출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입장에선 대형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이므로, 섣불리 큰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7년 개항 목표 '백령공항' 건설 사업도 부담감
옹진군, 보조금 확대 추진… 국비 확보 해결돼야
주민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선박 운영비(인건비와 유류비 등)를 전액 지원해주는 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조례나 법령을 개정해야 하는 데다, 특정 연안여객선 항로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옹진군 도서교통과 관계자는 "전국의 연안여객선사와 접촉해 보고 있지만, 관심을 나타내는 선사가 없어 당분간은 대형카페리선 운항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불편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