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혼자 사는 30대 A씨의 하루. 집을 나서기 전 우체통에 꽂힌 가스요금 고지서를 봤다. 매달 4만원 정도였던 요금이 지난해 12월엔 7만원 가까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져서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뜨거운 물을 더 쓰긴 했지만 이 정도로 오를 줄이야. 아직 전기요금 고지서는 받지 못했지만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이날 아침은 동네 분식집에서 파는 꼬마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6개에 3천원이던 꼬마김밥 개수가 5개로 줄었다. 치즈김밥이나 참치김밥은 3천500원에서 4천원으로 500원씩 가격이 올랐다. 6개를 먹으면 딱 배가 차서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5개짜리 꼬마김밥을 주문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해가며 회사로 향한다. 조만간 서울시가 지하철·버스 요금을 올린다는 뉴스를 본다. 솔직히 지금도 싸진 않은데. 푸념해봐도 소용이 없다.
회사 근처 베트남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소고기 쌀국수 1만2천원, 좀 더 비싼 쌀국수는 1만6천원. 돼지고기 볶음밥 1만2천원. 요새는 1만원 이하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후식으로 아메리카노도 마셨다. 그래도 총 2만원을 넘기진 않았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퇴근하고 장을 봐야 한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이것저것 카트에 담았다. 생수, 라면, 우유 등. 별로 안 담은 것 같은데 10만원이 넘었다. 뭔가 충동적으로 카트에 넣은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도 없다.
정말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 싶어 괜히 은행 앱을 켜본다. 월급은 요지부동이다. 전세대출 이자가 납입된 것도 확인한다. 확연히 오른 금리에, 이자도 확연히 올랐다. 그나마 대출 금리가 전보다는 낮아진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역대급 한파에 집이 싸늘하다. 보일러를 켜고, 온수로 몸을 씻는다. 전기장판도 켠다. 이번 달 요금은 더 나오겠지. 마음은 더 싸늘해진다.
즐겨먹던 꼬마김밥도 개수 줄어
서울로 출근 길 교통요금 인상소식
점심 먹고 커피 한잔 2만원 가까이
마트 장바구니 금세 10만원 넘어
공공요금마저 올라… 마음 더 싸늘
A씨의 하루는 지금 많은 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꺾이지 않는 물가 상승세에 금리·공공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의도치 않게 지출이 커진 서민들이 아우성이다.
경기연구원 조사에서도 응답자 57%는 식료품 소비 지출이 늘어났다고 했고, 43.4%는 물가 상승 때문에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26일 발표된 한국은행 경기본부 조사에선 1월 경기지역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89.4로 한달 전인 지난해 12월보다 0.3p 낮아졌다. 특히 현재 생활형편에 대한 지수가 지난달보다 3p 떨어지는 등 나빠졌다.
지난달의 가스요금 고지서가 최근 발송되면서 전국이 '난방비 폭탄' 충격에 휩싸였다. 최근 1년새 도시가스 요금은 38.4% 인상됐는데 겨울철 난방 수요가 높아진 점과 맞물려 내야할 비용이 껑충 오른 것이다.
문제는 올 2분기에 가스요금이 또다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이미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올랐다. 올 1분기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됐는데, 이는 2차 오일쇼크 이후 가장 많이 오른 것이다.
전기·가스요금의 지속적인 인상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의 적자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가스의 경우 LNG 수입 가격이 2021년 12월엔 t당 893달러였지만 1년 뒤인 지난해 12월엔 1천255달러로 40.5% 올랐다. 이에 지난해 말 기준 가스공사의 누적 손실은 9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전 역시 전기를 만들 때 필요한 연료비가 오르면서 전력 구매 비용이 크게 증가해, 지난해에만 30조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와 각 기관 입장이다.
지난해 가스公 9조·한전 30조 적자
올 1분기 전기료 kwh당 13.1원 인상
가스요금도 2분기 오를 가능성 높아
서울시, 4월 버스·지하철 요금 올려
경기·인천지역 주민들은 서울시가 버스·지하철 요금을 올리는 점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아 당장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서울시가 요금을 올리면 다른 지역도 덩달아 인상을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 변수다.
서울시는 다음달 중 공청회 등을 통해 버스·지하철 요금을 300원이나 400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절차를 예정대로 밟으면 오는 4월 요금이 인상된다.
여기에 경기도 택시 요금은 이르면 3월부터 1천원 이상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26일 경기도는 택시요금 조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지난 한해 소비자물가는 전국적으로 5.1% 올랐다. 2020년엔 전년 대비 0.5%, 2021년엔 2.5%가 상승했는데 2022년 훌쩍 뛴 것이다. 이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역별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는 5%, 인천시는 5.2%가 올랐다. → 그래프 참조
작년 소비자물가 IMF후 최고 상승
경기 5%·인천 5.2% ↑ 민생 직격탄
상반기 상승 지속, 하반기 안정 전망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 3.5%
추경호 부총리 "세금 인하해 안정"
상당수 품목의 물가가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곡물·팜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와 무관치 않다. 식료품 물가는 5.9%가 높아졌고 집값과 전기·가스·수도는 12.6%가 올랐다. 기름값 역시 경유가격이 31.9%가 치솟는 등 폭등했다.
새해에도 여러 생활필수품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생수시장 점유율 1위인 제주삼다수는 다음 달 1일 출고가를 평균 9.8% 올린다. 라면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일제히 가격이 올랐다. 우유와 각종 유제품 가격도 원유 단가 조정 전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각종 식재료 가격이 오르고 관리비마저 높아지자, 외식 가격은 더 상승했다. 지난해 외식 물가 상승률은 7.7%로 1992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 정보 제공 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경기도의 자장면 평균 가격은 5천793원이었지만 12월엔 6천500원으로 올랐다. 김밥은 지난해 1월 한 줄에 2천752원이었지만 지난해 9월 3천원을 넘겼고, 12월엔 3천62원을 기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YTN에 출연해 "아직 공공요금 인상도 대기하고 있어 여전히 물가 상방 압력이 높다"면서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물가는 안정될 것이다. 1분기를 지나면 서서히 4%대 물가(상승률)를 보게 되고, 하반기로 가면 3%대 물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종 세금을 인하해 우리 국민이 일반적으로 접하는 민생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8일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한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다면서도, 추 부총리처럼 연말에 물가 상승률이 3% 정도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