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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국내에서 서울역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민자역사인 경인전철 동인천 민자역사 건물이 철거된다. 1989년 준공된 이후 인천백화점이 들어서며 인천 대표 상권으로 자리매김했던 이곳은 2009년 쇼핑몰 폐업 이후 흉물로 방치됐다.

최근 정부가 민자역사 건물을 철거하고 복합개발사업을 추진키로 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1899년 국내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인천~노량진 구간이 개통하면서 동인천역도 운영됐다. 당시 이름은 축현역이었다. 이후 명칭이 상인천역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축현역으로 불렸다. 이후 1955년 동인천역으로 변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 표 참조

축현이라는 이름이 동인천으로 바뀐 것만큼이나 주변 지역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개항기에 이어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동인천역이 된 이후에도 변화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89년 조성된 동인천역 민자역사가 거쳐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인천 상권의 변화뿐 아니라 도시가 확장하는 과정 등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된다.

이슈앤스토리 / 동인천역민자역사
1989년 4월 15일 동인천 민자역사에 인천백화점이 개장했다. 개장 전날 촬영된 인천백화점 전경. /경인일보DB

동인천역 민자역사는 서울역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조성된 민자역사다. 역사가 준공하면서 인천백화점이 이 곳에 문을 열었다.

동인천역 일대는 명실상부한 인천의 중심지였다. 경인선은 인천의 유일한 철도였고 제물포고, 인일여고, 인천여고 등 많은 학교가 동인천역 주변에 밀집돼 있었다.

 

인접 신포·인현동, 당대 번화가 1번지
1970~80년대 대한서림은 '만남의 장소'


인천을 오가는 대부분의 시내버스가 이 일대를 경유했다. 1985년에 현재 중구청 자리에 있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행정 기능은 이전했지만, 동인천역과 인접해 있는 신포동·인현동 등은 인천에서 가장 번화하고 분주한 공간이었다.

 

"서울에 종로서적이 있었다면 인천에는 대한서림이 있다. 70, 80년대 젊은이들의 모임은 책방 앞에서 먼저 만나 장소를 옮기는 아날로그식 만남이었다. 동인천역에 내리면 한 눈에 보이던 5층 건물 대한서림은 인천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이자 랜드마크였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대한서림에서 일단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무슨 사정으로 끝내 나타나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며 읽은 책이 짧게는 시집이요, 길게는 소설이었다."

인천시립박물관 유동현 관장이 쓴 '골목 살아지다'에서 이 일대를 설명한 글이다.

인천백화점을 품은 동인천역 민자역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문을 열었다. 인천백화점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다른 백화점과는 달랐다. 주변 상인들이 합작해 운영하는 백화점이었으며, 인천 지역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인천시민들은 이곳에서 쇼핑을 하고, 동인천역 앞 식당에서 허기를 달랬다.

하지만 인천백화점의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5년 인천시청이 중구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옮겨가면서 동인천역 일대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행정기능이 이전한 뒤 상권도 점차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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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 앞에 있는 대한서림. 8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으나 상권이 쇠락하면서 발길도 줄어들고 있다. /경인일보DB

1997년에 인천 시청 인근인 미추홀구 관교동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문을 열었다. 인천백화점이 문을 연 지 8년 만이다. 유통 대기업 중 신세계백화점이 처음 인천에 진출했다. 지역 상인들이 모여 만든 인천백화점보다 규모나 상품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소상공인과 대기업이 경쟁하는 꼴이었다. 타격은 불가피했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개장 다음날에 국가 부도라고도 불렸던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인천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유통 업계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인천백화점 입장에서는 악재가 이어졌다. 1999년 10월 인천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동인천역을 포함한 인천 중구가 가졌던 '도심'으로서의 위상은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청 이전·IMF·화재참사로 상권이동
백화점은 2001년·쇼핑몰 2009년 폐업


같은 달에는 '인현동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57명이 희생된 이 참사의 영향으로 이 지역 일대 상권의 침체가 가속화했다. 이 사고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 놀이문화, 화재에 취약한 구조물 등에 대해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참사 현장 인근엔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와 함께 청소년 활동공간인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생겼다.

참사는 상권침체로 이어졌다. 외환위기, 대기업 백화점 출점, 주변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까지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인천백화점은 2001년 결국 문을 닫았다. 백화점이 문을 연 지 12년 만이다.

인천백화점이 문을 닫은 민자역사 건물에는 종합쇼핑몰인 '엔조이몰'이 문을 열었다. 신세계백화점 일대 구월동으로 상권이 옮겨간 상황에서 쇼핑몰도 성황을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8년간 영업한 끝에 2009년 폐업했다.

상권의 이동은 계속됐다. 중구에서 남동구로 옮겨간 데 이어, 송도국제도시가 새로운 상권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엔조이몰이 폐업하고 두달 뒤 인천지하철 송도 연장구간이 개통했는데, 이는 송도국제도시 상권 활성화의 기폭제가 됐다.

2016년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이, 이듬해엔 복합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가 송도국제도시에 문을 열었다. 동인천역 민자역사는 엔조이몰 폐업 이후 송도국제도시가 인천 대표 상권으로 성장하는 10여 년 동안 아무 시설도 들어서지 않은 채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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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민자역사 전경. 인천백화점 폐업에 이어 문을 연 쇼핑몰이 2009년 폐업하면서 10여년째 비어 있다. /경인일보DB

새 복합개발, 국가철도공단 추진키로 

 

정부는 민자역사를 그대로 두면 지역 침체와 주민 불편 등을 가중할 것으로 판단하고 철거 후 복합개발을 추진키로 했다. 동인천 민자역사가 들어선 지 24년, 엔조이몰 폐업 후 14년 만이다.

복합개발사업은 국가철도공단이 인천시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추진한다. 동인천 민자역사 철거로 확보할 수 있는 부지 면적은 1만2천㎡ 정도인데, 동인천 남광장 등 국토부 소유 부지까지 합칠 경우 1만4천㎡까지 확보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장기간 방치된 동인천 민자역사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국회 요청 등에 따라 철도산업위에서 민자역사를 철거하고 복합개발하기로 결정한 것" 이라며 "국가철도공단이 주체가 돼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건물을 철거하고, 복합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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