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박찬종(33)씨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대면에 마스크를 썼음에도 그가 박찬종씨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웃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의족 덕분에 제가 누군지 한 번에 찾기 쉽죠?"
박찬종씨는 자신에 대해 '화학계 제조업 연구직으로 일하던 일반적인 회사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자전거를 취미로 즐기며 영상을 공유하는 '자전거 유튜버'이기도 했다. 평소처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지난해 9월, 그는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박찬종씨는 사고 당시 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는 구급차가 오고 응급처치가 이뤄지는 그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많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 아내에 대한 감정이 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찬종씨와 그의 아내는 지난 2021년 11월 혼인신고를 한 후 지난해 초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구했다. 그동안 코로나19와 사고로 미뤘던 결혼식이 오는 5월 예정돼 있다. 그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아내가 정말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영지(아내)는 저만큼이나 사고 이후의 과정들을 빠르게 이겨냈던 것 같아요. 다리 수술 전에도 나는 다리 보고 만나는 거 아니라며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다독여줬어요. 장난기가 많아서 저에게 한 다리로 서 있는 홍학 사진을 보내면서 웃기기도 하고요. 정말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예요."
박찬종씨는 병상에서 그때의 기억을 수첩에 적었다. 아내에게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한 기록은 블로그로 이어졌다. 그는 사고의 순간과 더불어 병상 일기를 블로그에 남겼다. 그의 글은 온라인상에 널리 퍼지며 큰 관심을 받았다.
화학계 연구직 근무 일반 회사원… 지난해 9월 불의의 교통사고 겪어
사고 순간 더불어 병상 일기 블로그 남겨 큰 관심… 연일 응원의 댓글
'국가대표' 새 꿈 생겨… 장애인 사이클 선수 3월부터 훈련 시작 할 것
그의 블로그와 SNS에는 연일 응원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그중에는 비슷한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글도 함께였다.사고 순간 더불어 병상 일기 블로그 남겨 큰 관심… 연일 응원의 댓글
'국가대표' 새 꿈 생겨… 장애인 사이클 선수 3월부터 훈련 시작 할 것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려울 거 같아 수첩에 하나 둘 적어봤어요. 적어놓고 보니까 굉장히 생생하더라고요. 이런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어디서 접하긴 힘든 경험이니까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 글을 보며 자신의 가족도 그 순간에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지 생각이 나 울었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저를 응원해주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박찬종씨는 지난달에 처음 의족을 착용했다. 사고 후 112일 만에 두 발로 일어선 것이다.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두 번째 챕터를 쓰고 있다. 사고 순간부터 회복까지가 첫 번째 챕터였다면, 장애인으로서 일상생활로 복귀한 지금은 새로운 글감으로 블로그를 채우고 있다.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세탁소에서 바지를 수선할 때 같은, 비장애인이었으면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장애에 대해서 모르는 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너무 당연한 것들이죠. 저도 장애인 주차장이 왜 넓어야 하는지 몰랐는데, 당장 저만 해도 의족 때문에 차 문을 활짝 열어야 내릴 수 있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관심을 받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을 장애 인식 개선에 쓰고 싶어요.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아닌,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님처럼 밝은 모습으로 그려내 일상에서의 변화를 이끌고 싶습니다."
박찬종씨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사고 이후 자전거를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와 감동을 전해주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전거 판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까지 많은 응원을 받았으니 그게 도리 아닐까요?"
새로운 인생과 함께 그는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출전이라는 큰 꿈도 생겼다. 장애인 사이클 선수 영입 제의도 받은 상태다. 국가대표 선수로 패럴림픽에 출전하려면 오는 5월·9월·10월에 있는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한다. 소속 팀을 알아보고 있는 그는 이르면 오는 3월부터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이와는 별개로 10~11월께 예정된 인천 송도 듀애슬론 대회에 출전할 생각이다. 듀애슬론 대회는 철인 3종경기에서 수영을 제외한 자전거, 달리기 두 종목을 쉬지 않고 연달아 치르는 경기다.
"병원에 있을 때 앞으로 육체적으로 뭐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패럴림픽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패럴림픽은 재활에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나오는 데니까요. 다만 패럴림픽은 제가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어서, 우선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듀애슬론 대회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박찬종씨는 이를 위해 조만간 달리기용 의족을 제작할 예정이다. 그의 사연을 들은 의족 회사가 지원을 약속했다.
이 같은 도전들에 희망을 품고 그는 현재 몸만들기에 한창이라고 했다. 식단관리와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면서 퇴원 이후 4㎏ 정도를 감량한 상태다. 재활센터를 오가며 실내형 자전거를 타고 근력 운동을 하는 등 땀 흘리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박찬종씨는 앞으로도 블로그와 SNS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자신의 블로그와 SNS 등이 절단 환자와 가족을 위한 소통공간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글을 쓴 이후 절단 환자나 절단 환자의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사고 전에는 절단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고, 의족 등 정보를 담은 제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더라고요. 지금 제 블로그와 SNS 활동이 비슷한 상황의 분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