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현 초상
조병현 초상 어필 표제본. /경기도박물관 제공

경기도박물관이 풍양조씨 회양공파 후손들로부터 유물 500여점을 기증받았다. 기증된 유물은 양주시에 위치한 풍양조씨 회양공파 묘역에서 출토된 지석과 복식, 석물 등과 집안에서 대대로 보관해 온 고문서, 고서, 초상화 등이다.

경기도박물관은 2019년부터 유물 감정평가와 해제, 번역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으며, 3년여간 진행된 분석과 연구성과 등을 담은 '풍양조씨 회양공파 후손가 기증유물' 보고서를 발간했다. 

 

가문의 역사와 기증유물의 가치, 조선시대 명문가 사대부들의 다양하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이번 보고서를 토대로 주요 유물들을 소개한다.

지석·고문서·초상화 등 500여점
3년간 감정평가… 연구성과 등 담아
'조병현 어필' 18세기 양식 원형 유지
'조환 연행일록' 국내 유일본 가치
'조병현 유서·절명시' 상례·제례 당부


■ 조병현 초상 어필 표제본


조선시대는 초상화가 크게 발달한 시기였다. 조선사회의 권력층이자 높은 관직에 오른 사대부의 초상화가 비중을 차지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관복을 입은 공신 초상화였다.

풍양조씨 후손가에서는 조환, 조득영, 조병현 세 사람의 초상화 5점을 기증했는데, 우수한 회화작품으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 박물관의 설명이다.

그중에서도 조병현 초상 어필 표제본은 18세기 후반의 초상화 양식을 잘 보여주며, 정교한 묘사와 더불어 족자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초상화 속 조병현은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있으며, 허리에는 서대를 두르고 가슴에는 당상관을 나타내는 쌍학흉배를 붙였다.

이 작품은 1846년 겨울에 제작한 것으로 '향천'이라는 호를 쓰는 인물이 제목을 썼다. 여기서 향천은 헌종의 어호이다. 헌종이 조병현의 초상을 그려 궁궐로 가져오라고 한 뒤 '성재'라는 호를 하사하고 어필로 표제를 썼다고 한다.

연행일록2
조환의 연행일록. /경기도박물관 제공

■ 조환의 연행일록


영조~정조년간의 문신으로 대사헌과 좌참찬 등을 역임한 조환이 연행을 다녀오며 쓴 '연행일록'은 1787년 10월 20일 한양을 출발해 12월 24일 북경에 도착, 이듬해 2월 4일에 모든 일정을 마치고 3월 24일 한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기록했다.

편년체 형식으로 황제를 만나는 등의 공식 일정과 황제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 청나라로부터 제공된 각종 음식물과 기물들, 청나라 관원들의 일화 등이 적혀있다. 이는 필사본으로 필사자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동일한 필사본은 현재 일본 도쿄대학 오쿠라문고에 있다. 즉 이 필사본은 우리나라 유일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조병현 유서 및 절명시


조병현은 1822년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판서와 홍문관 대제학을 역임했다. 그는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는데, 1849년 철종의 즉위로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자 안동김씨 일파에게 공격받아 사사됐고, 1853년 신원됐다.

조병현이 사사되던 즈음에 작성한 유서에는 상례와 제례를 간소히 할 것과 선친과 자신의 문집을 간행하지 말 것, 두 아들에게 슬픔에 지쳐 건강을 잃지 말고 집안을 잘 보존할 것, 숨 쉬는 동안 나라의 은혜를 잊지 말 것 등을 당부했다.

죽음을 앞두고 쓴 절명시는 2편으로 되어 있다. 그중 한 편에는 '인생은 전광석화 같고, 거품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하니, 이것저것 헤아릴 필요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