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설립(1896년) 125주년을 기념해 '미리내본당 125년사'를 발간한 안성 미리내 성지 내 '미리내 성요셉성당'을 찾았다. 가는 길은 험했다. 안성대로에서 노곡교차로로 빠져나와 성지 들머리에 닿는 데만 차로 14분(5㎞ 거리)이 걸렸다. 쌍령산을 품은 작은 분지형태의 이 성지를 눈에 담게 되자 이곳이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들의 마을 '교우촌'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성지 초입에는 이곳의 역사를 증거하는 '미리내 성요셉성당'이 있다. 1820년대 교우촌 시절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체인 '공소'를 거쳐 1896년 본당 지위를 얻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곡진한 역사를 이 성당은 층층이 품고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 두 번째 본당이자 경기도 천주교 전파의 산실로 지역적 의미도 깊은 곳이다.
1907년 건립 '성요셉성당' 외형 그대로
신앙공동체 이어온 주민들 기록물 제작
지난 24일 성지에서 만난 지철현 주임신부는 "박해시대 때부터 이 성당이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 신자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깃든 장소이며, 종교적 가치를 초월해 마을 공동체를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이 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당대 마을공동체의 생활상은 1907년 완공돼 지금까지 외형을 보존 중인 성당과 그 일대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강도영 초대 신부와 마을 사람들이 산과 골짜기에서 수집한 자연석과 생석회 등을 활용해 성당 외벽을 쌓아올렸는데,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건축에 필요한 용수와 식수 확보를 위해 판 '말구 우물'도 유물로 남아, 당시의 쓰임을 가늠하게 한다. 성지가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로 이름붙은 것 역시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서 파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교우촌 사람들이 이곳에 숨어 옹기를 굽고 땅을 일구면서 본 밤하늘의 불빛이 은하수처럼 반짝여서 그렇게 부르곤 했다는 것이다.
"박해시절부터 자리… 긍지 깃든 장소"
산책로 명소 "누구나 와서 평안 느끼길"
지 신부와 성당의 오랜 신자들이 최근 의미 있는 결과물을 냈다. 본당 설립 125주년을 기념해 '미리내본당 125년사'를 발간한 것이다. 2년 전, 125주년을 맞아 교우들과 뜻을 모은 게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지 신부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성당의 이야기를 기록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교우들과 함께 했다"며 "역사만 보면 딱딱한 이야기일 수 있어서 알리면 좋을 성당과 교우들의 이야기를 군데군데 넣어 책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성당의 교우이자 책 집필을 총괄한 이정진 씨는 "340명 정도 되는 지금의 교우분들 가운데 90대에 이른 '해방둥이'의 증언도 있어 기록적 가치가 크다"며 "무엇보다 외부 사람들이 아닌 신부님과 교우들이 합심해 만든 결과물인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출간 소회를 밝혔다.
사실 미리내 성지에는 성요셉성당 중심의 본당뿐 아니라 우리나라 첫 가톨릭 성직자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장소인 점에서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말 성지 안에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 성당'(김대건기념성당)과 묘역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예고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 이곳은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과 정갈하게 뻗은 산책로로 매해 15만~20만명이 찾고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성당 사람들은 천주교인뿐 아니라, 종교를 가지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편한 마음으로 성지를 찾아주길 바라고 있다. 흙을 밟으며 거닐 수 있는 산책로를 최근 하나 더 마련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
지 신부는 "천주교 박해 역사가 자리한 장소라는 것을 알고 돌아가시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이 성지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천주교 은총의 경구를 실천하는 공간이길 바란다. 누구나 와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