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과 예술이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기억의 기물'을 만난다면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규 작가가 함께한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목기가 주제이다.
선사시대 토기를 모티브로 한 작가는 나무로 그릇을 만들어 썼을 석기시대 이전의 '신목기시대'를 상상하며 작업을 했다. 유물과 같이 정해진 주제에 집중했던 고고학 관련 전시에서 벗어나 예술과의 접점을 찾아 외연을 확장한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것이 포인트이다.
'신목기시대' 고고학적 상상… 호기심 자극하는 목기들
같은 생명의 흐름속 겉모습 제각각… 누군가의 '토템' 같아
'이끼가 자라는 그릇' 생장등 켜놓아 전시기간 변화 표현
전시는 나무가 자라 목기가 되는 과정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영상으로 시작된다. 지역의 특색과 생명이 자라는 땅의 모습, 나무가 하나의 목기로 탄생하는 이미지들을 보며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그 재료가 주는 차분함이 먼저 전해진다.
목기의 질감은 어떤지 만져볼 수 있도록 한 코너와 작은 비너스 조각상처럼 몸에 지니거나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소형 목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쪽에는 색깔과 크기, 다양한 모양을 한 목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어떤 것은 그을리기도 했고 어떤 것은 갈라지거나 터져있기도 하다.
작품의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생명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며, 그 속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거울 앞에 세워진 작은 목기들의 숲에서는 하나의 나무가 여러 개의 목기가 되고, 그 목기들이 또 쌓여 다시 하나의 나무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세워둔 토템 같기도 한 작품은 돌고 도는 '순환'의 의미를 담으며 묘한 기운을 전한다.
전시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곳은 이끼가 자라는 목기였다. 눈으로 봐도 소복해 보일 정도의 이끼가 덮여있는 목기는 전시를 시작할 땐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생장등을 켜놓고 이끼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는데 다행히 식물은 잘 살아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목기에서 또다시 자라는 생명을 통해 자연과 함께 변화하는 모습이 나무였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들은 빛과 공기와 물을 머금고 있는 하나의 존재임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이 놓인 공간에는 전곡리의 빗소리가 재생되고 숲 속에 온 듯한 은은한 향까지 맡을 수 있어 그야말로 힐링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하나 깎아내고 다듬는 성실한 노동이 만든 산물, 단순하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선과 조형미를 지닌 목기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고고학의 한 페이지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나무의 생명이 한층 한층 쌓여있음이 느껴진다. 전시는 전곡선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26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