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섭 관장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
'박물관은 돈 먹는 하마'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입보다 지출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이 말은 2008년 5월 국공립박물관 무료관람정책이 시행된 뒤 더 공공연해졌다. 그래서 박물관은 직접적인 경제 생산성 말고 다른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전 세계 박물관의 33%가 몰려있는 미국의 박물관연합회(AAM)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 그들의 구호는 '박물관 덕분에 세상이 더 좋아진다'인데, 근거가 다채롭고 구체적이다.

첫째, 박물관은 경제 엔진이라는 것이다. 박물관은 미국에서 72만6천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매년 500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거둔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박물관의 경제활동은 120억 달러 이상의 세금 수입을 창출하며, 그중 3분의 1은 지방정부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9%는 박물관이 지역사회에 중요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한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둘째, 박물관은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가 미국 최고의 도시를 선정할 때 박물관 밀집도를 교육이나 경제 지표보다 우선으로 고려하는 이유라고 한다.

셋째, 박물관은 자원봉사, 온라인 커뮤니티, 교육프로그램, 문화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서비스하며.

넷째, 박물관이 학교와 협력해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유치원 때 박물관을 방문했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기, 수학, 과학 성취도 점수가 더 높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박물관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며, 공중보건을 개선하고 생물 종을 보호하는 소통의 장이라는 점을 미국박물관연합회는 강조한다.

이처럼 박물관은 정말 좋은 역할만 할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에는 본전 건물보다 몇 배나 더 큰 유슈칸(遊就館)이라는 박물관이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명을 제사 지내는 곳이기에 유슈칸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전쟁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데, 패널·모형·영상 등 연출기법은 뛰어나지만 내용은 정말 형편없다.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점령한 뒤 이듬해 2월까지 수십만 명을 학살한 이른바 난징대학살을 "시내에서 중국 패잔병 검문이 엄격하게 시행되었다"는 문구로 호도해놓았을 정도이다.

특히 전시실 끝 부분에서 1945년 8월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죽은 젊은이들의 명함판 흑백사진을 벽면 빼곡히 붙여놓고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한 대목에 이르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휴일이면 남녀노소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일본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는데, 매년 그곳을 찾는 정치인들이 어찌 망언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박물관은 없느니만 못하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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