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한 뒤인 1912년에는 새로 건물을 짓고 이왕가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1938년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이왕가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을 줄인 말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한·중·일 3국에서만 쓰는 이름이다. 박물관은 자연사, 역사, 민속, 예술, 과학 등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지만, 역사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이 가장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발행하는 '문화기반시설총람'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전국에는 1천194개의 박물관·미술관이 있는데, 그중 909개(76%)가 박물관이고 285개(24%)가 미술관이다. 박물관은 국공립 439개(48%), 사립 364개(40%), 대학 106개(12%) 순이며, 미술관은 사립 190개(67%), 국공립 80개(28%), 대학 15개(5%) 순이다. 박물관은 국공립이 사립보다 많고, 미술관은 사립이 국공립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어·영어·수학·미술·음악·체육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과목이다. 그래서 배운 사람이 점점 더 편해진다.
다른 하나는 사회·윤리·역사는 사회(국가) 발전을 위한 과목이다. 배운 사람이 불편을 감수할수록 사회는 더 따뜻해지고 깨끗해지고 부유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목적과 효능을 뮤지엄에서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각각 구현한다.
미술관의 전시·교육 목표는 관람객의 감성 자극, 영감 확장, 정서 함양, 개인의 인격과 행복 증진 등이다. 그래서 전시 내용에는 정답이 따로 없고, 전시물은 오로지 예술성을 따져 선정한다. 미술관이 복제품을 전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박물관의 목표는 사회성 배양, 통찰력 배양, 공동체 의식 함양, 가치관 정립 등이다. 전시 내용에 이념과 옳고 그름이 담겨 있으며 역사성이 전시물 선정의 우선 기준이다. 사회 공동체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면 복제품, 재현품도 전시에 활용한다.
예술성은 역사 이해의 수단일 뿐이다. 미술관은 현재, 보편성에 주목하고, 박물관은 과거, 특수성에 주목한다.
미술관은 직접 경험 및 체험을 바탕으로 감각적, 감정적, 주관적 관람을 권장한다. 이에 반해 박물관은 간접 경험 및 추체험을 바탕으로 논리적, 이성적, 객관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이처럼 미술관과 박물관은 역할이 사뭇 다르다. 그런데 박물관처럼 운영하려는 미술관은 거의 없지만, 미술관처럼 운영하려는 박물관은 제법 눈에 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