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청춘이랍니다."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25년 동안 잔디이용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노경(70)씨는 "주름진 가위 손이지만 이웃 고객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 자신의 마음조차 정화되는 기분"이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그 끈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집안이 가난해 16세 때부터 이발소에서 심부름 일을 하며 이용기술을 배운 그는 연탄을 구입할 형편도 못될 만큼 어려운 생활고의 연속이었지만, 44년 동안 걸산동 오지마을을 매달 방문해 주민들에게 재능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김씨는 1979년 3월부터 마을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 위원회, 새마을회 등 단체활동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우연한 기회에 걸산동을 방문, 당시 동두천초등학교 걸산분교에 학용품을 전달하고 귀갓길에 머리가 덥수룩한 어르신을 발견하고는 잘라드린 것이 인연이 됐다.
그는 한 달 뒤 다시 이발 기구를 챙겨 마을 집집마다 방문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머리를 잘라줬다.
김씨는 "어느날 혼자 살고 있는 90세 노인을 이발했는데 영정사진을 부탁하더라. 재차 방문 때 사진 전달을 잊어버려 혼났다"며 "절대 잊지 않기로 하고 한 달 되던 날에 다시 어르신을 찾아뵈니 그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1979년 단체활동 하며 걸산동 인연
수십년 봉사 어느덧 고객은 '2대째'
주민들 행복하게 웃을때 보람 느껴
어느덧 봉사활동 40여 년을 훌쩍 넘긴 세월은 그때 그 시절 어르신 자녀들이 지금은 노인이 됐고 그는 2대째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보산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마을에 이발 봉사를 예고하면 다음 날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며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걸산동 주민들에게 애정을 갖게 된 배경은 이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2사단 캠프 케이시 후문을 통과하거나 먼 산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먼 거리 통행불편으로 머리 손질은 뒤로하고 집안 기거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이동수단이 없어 십리도 넘는 길을 이발 기구를 배낭에 메고 걸어서 왕래했지만 요즘에는 오토바이가 있어 그나마 수월해졌다"고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쁘게 다듬어진 잔디를 보며 가게 상호명을 작명했다"며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 시선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동두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