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끊어버린 이들이 있다. 복잡한 심경 위로 드러난 비정한 표정으로.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그들은 악마가 됐을까. 최근 무대에 오른 뮤지컬 '광염소나타'와 '인터뷰'는 '살인'과 '죽음'이라는 소재가 작품의 큰 줄기를 이룬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열망이 뒤틀린 채 표현되기도 하고, 여러 기억의 조각이 하나로 이어지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기도 하는 이들 작품은 각각이 가진 매력으로 관객을 극 속에 빠져들게 한다.
끔찍한 살인,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결핍'과 '집착'이 가져온 결말을 풀어낸 두 작품을 소개한다.
살인으로 영감 얻은 음악가… 비뚤어진 열망 강렬, 배우들이 직접 연주
살인사건 진범 찾는 심리싸움 팽팽… 반전 속에 맞춰지는 진실 긴장감
■ 뮤지컬 '광염소나타'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음악가 제이. 그는 이후 데뷔작을 뛰어넘는 곡을 쓰지 못한 채 초조함과 압박감에 시달리다 클래식계의 저명한 교수 케이를 찾아가 작곡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와 냉담한 평가가 이어지고, 좋은 곡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갈증은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는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그리고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그에게 거짓말처럼 악상이 떠올랐다. 하룻밤 사이에 정신없이 써내려 간 믿을 수 없는 곡들, 그를 향해 보내는 찬사는 또다시 그를 죽음에 다가서게 한다.
여기에 제이의 악상이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을 안 뒤 그를 몰아붙이며 살인을 부추기는 케이, 그는 지금까지 살해당한 사람들도 모자라 제이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뮤즈로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작곡가 에스를 죽여 악장을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
'광염 소나타'는 제이와 케이, 에스라는 세 음악가가 각자 쫓는 절대적 예술을 그린 스릴러 뮤지컬이다.
과정은 피로 물들었지만 오히려 아름답고도 빛나는 곡이란 결과물을 얻게 되는 제이와 그런 그를 자신의 성공에 이용하고 싶어하는 케이의 비뚤어진 열망이 극 내내 강렬하게 표현된다. 또 음악을 위해 살인자가 되어 버린 제이가 희열과 고통이 뒤섞인 채 한 악장씩 곡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극은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직접 라이브 연주를 한다. 극 속에서 만들어진 곡들은 피아노를 치는 배우들의 손끝에서 완성되고, 이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3중주가 음악적 풍부함을 더하며 극의 매력을 높인다. 6월 4일까지 드림아트센터 1관.
■ 뮤지컬 '인터뷰'
'똑. 똑. 똑' 2001년 런던의 작은 사무실에 작가 지망생인 '싱클레어'가 문을 두드렸다. 추리소설 '인형의 죽음'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유진 킴'은 자신을 찾아온 싱클레어를 상대로 보조작가 면접 인터뷰를 시작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유진은 싱클레어에게 자살을 기도한 연쇄살인범의 유서를 내밀며 소설을 써보라 제안하고, 이야기를 쏟아내던 싱클레어는 불현듯 유진에게 추리소설의 모델이 의문의 사고로 죽은 소녀 '조안 시니어'냐고 묻는다.
순식간에 바뀐 두 사람의 눈빛, 소설 '인형의 죽음'을 통해 알려진 '오필리어 살인범'에 대해 파헤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극 초반 차분했던 이들의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격렬한 심리 싸움으로 변해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 이 싸움을 따라가다 보면 거듭되는 반전 속에 하나씩 흩어져 있던 진실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오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조각내 버린 싱클레어와 조각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름답지만 섬뜩한 모습의 조안, 의문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유진까지, 세 인물은 극 속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팽팽한 줄처럼 표현되며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극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인터뷰'는 인물이 가지는 깊은 내면의 어둠과 그 안에 숨겨진 하나의 진실을 향해 쉴 틈 없이 달려간다. 이에 상황과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드는 단 한 대의 피아노 연주도 이 극의 매력 포인트이다. 5월 28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