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전태호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장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전태호 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인천 부평가족공원 일반인희생자추모관 인근에 설치된 '노랑드레' 언덕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가보려 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 전태호(46) 위원장은 9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을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사고 당일 이른 아침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함께 제주도로 떠난 아버지가 탑승한 배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였다"며 "곧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진도로 향했는데 텔레비전에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만 흘러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그는 구조선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생존자를 태운 1척의 구조선엔 아버지는 없었다. 전 위원장 아버지의 시신은 사고 발생 이틀 뒤인 4월 18일 선체와 900m 떨어진 해역에서 수습됐다. 그는 그렇게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45명 중 1명의 유가족이 됐다.

세월호 참사는 올해로 9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침몰 희생자 중에는 45명의 일반인 희생자가 있다. 초등학교 동창생, 동호회 회원, 일가족 등 각각의 사연을 가진 일반인 희생자 43명과 구조활동을 벌이다 숨을 거둔 잠수부 2명이다.

동호회원·잠수부 등 45명·유가족에 관심 상대적 부족
친지 등 잃은 울분 안으로 삭이다 지병 생기는 일 많아
침몰 원인 다양한 의견 당연… 토론하면 해결책 늘어
바람개비 설치 '노랑드레 언덕' 꾸미는 등 올해도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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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일반인 희생자들과 유가족, 생존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전 위원장은 "참사 초반엔 일반인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며 "생존자이면서 유가족인 경우엔 더 큰 트라우마에 빠진다. 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트라우마 센터를 만들었지만 한정된 인력에, 단원고 피해자 위주로 지원 계획이 세워지는 경향이 있어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도움을 받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안산에 차려진 트라우마센터에 찾아가서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그는 "3년 전 일반인유가족협의회의 요청으로 인천시와 보건복지부가 인천에 있는 건강증진센터에 담당 직원을 배정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유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또 있었다. 전 위원장은 "가족 구성원 중 홀로 살아남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살던 집의 상속자가 됐다. 의료보험료, 세금 등이 모두 아이 앞으로 청구된 일도 있었다"며 "상대적으로 일반인 희생자들은 주목받지 못하다 보니 행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존자나 유가족들은 가족 등을 잃은 울분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이다 지병이 생기는 일이 많다는 것이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도 "혈압이 오르는 등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겼다. 올해만 두 차례 갑작스럽게 쓰러졌는데 병원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혈당이 급격히 올랐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해 온 이유에 대해 그는 "참사가 발생한 뒤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생존자들과 유족들을 돌보기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자식, 내 부모 일인데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냐는 생각으로 위원회의 집행부원들과 함께 여기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유가족이 된 그의 삶은 분명 과거와는 달라졌다. 그는 "가끔 배를 타면 선사들의 고박(화물이나 컨테이너를 고정하는 것) 상태나 탑승 인원을 확인하는 등 예전엔 신경도 안 썼던 부분을 눈여겨보게 된다"며 "안전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고 했다.

전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자 그곳에 응집했던 것 같다"며 "대한민국 헌법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정부와 지자체가 사전에 인지하고 인력 배치 등 대처를 했다면 사고를 막았을 텐데, 그리고 구조 요청이 있었을 때 제대로 대처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2018년 출범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지난해 9월 활동을 종료했다.

전 위원장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한가지 의견이 있으면 반대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지고 싸우기보다는 토론을 하다 보면 해결책이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태호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우리 사회가 안전한지 되돌아보기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전 위원장은 올해도 분주한 봄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9주기 인천추모위원회는 지난달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1일부터 16일까지를 세월호 추모와 기억 주간으로 선포했다.

추모관 인근 언덕에 노란색 바람개비를 설치한 '노랑드레 언덕'을 꾸몄고, 추모관에선 제주 생존자 작품 전시를 진행했다. 오는 15일 인천시청 앞 애뜰광장에선 추모문화제를, 16일엔 일반인 희생자 9주기 추모식을 연다.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가보려 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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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전태호 위원장은?

전태호 위원장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세월호일반인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부터 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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