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할 때면 종종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질 때가 있다. 작품에서 다루는 소재가 우리 일상과 한참 벗어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저 속으로 감탄사만을 연발하며 다큐멘터리가 전달하는 정보를 허겁지겁 주워 담는데 급급해 하기 일쑤다. 평소 잘난 척하던 나쁜 버릇도 자연 다큐멘터리 앞에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단군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불린 새만금사업. 이 새만금사업으로 변화가 진행 중인 갯벌과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황윤 감독)와 만나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의 한 환경단체를 주축으로 여러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 마련한 '특별시사회' 현장에서였다.
'단군이래 최대 간척' 생태계 영향
여전히 살아있는 자연 카메라 담아
이날 '수라'는 완벽하게 날 제압했다.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의지의 승리' 도입부에 버금가는, 새들의 시선으로 수라 갯벌의 모습을 담아낸 웅장한 스케일,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의 신비로운 모습, 갯벌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 이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야만성을 확인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갯벌에 이렇게 무지했구나'하는 충격을 전해줬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갯벌을 밟을 수 있는 인천에서 살고 있기에 자괴감은 더 컸다. 따지고 보면 영화가 날 제압했다라기 보다 수라 갯벌이 일깨워준 나의 '무지'와 '부끄러움'에 내가 스스로 제압당한 꼴이었다.
영화 도입부에서 황윤 감독도 내레이션을 통해 무지를 고백한다. 방조제가 건설되고 이미 끝나버린 줄 알고 있었던 새만금 갯벌에서 새를 조사한다는 '새만금생태조사단'의 말을 그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갯벌은 여전히 살아있었다고 한다. 저어새 수백 마리를 만났고 검은머리갈매기도 여전히 갯벌을 드나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이번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 계기였다.
작품은 한 활동가의 모습을 비중 있게 그린다. 청년 시절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새의 모습을 모니터링하던 그는 어느새 중년이 됐고, 지금은 새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된 그의 아들이 수라갯벌을 함께 지킨다. 수만 마리에 이르는 도요새의 군무를 목격한 그는 20여 년의 세월을 갯벌을 지키며 보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걸 보지 못했고, 또 몰랐다면 저도 그냥 직장 다니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죄인가.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죄."
한국으로 날아오는 도요새는 뉴질랜드를 출발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여정을 보낸다. 새만금의 생태계 파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새만금은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고, 새만금을 살리는 것이 한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길일 가능성도 있다.
아들과 새모니터링 활동가 모습도
'부국제' 등서 소개, 6월 전국 개봉
인천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작품이다. 지금도 갯벌 파괴가 진행 중이고, 강화갯벌을 포함한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하는 일부 지역 여론도 있는데, 많은 이들이 작품을 감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큐멘터리 '수라'는 아직 정식 개봉이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됐다. 현재는 정식 개봉에 앞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는 6월 전국 상영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