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에 위험신호가 잡힌다.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과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유지해온 한국이지만, 문해력 문제로 소통에 문제가 생긴 사례가 여럿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더 이상 문해력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해력은 사전적으로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좁은 의미에서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느냐의 문제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얼마나 정확하게 본 뜻을 이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간 높은 교육수준으로 문해력에 대해 크게 우려해본 적 없는 우리 사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위기를 맞은 학업성취도 양극화 문제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짧고 자극적인 소통방식이 문해력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높은 교육수준 불구 인터넷 중심 단문 소통으로 '위기'
학업성취도 '양극화 심화' 읽기 분야 세계순위 하락세
AI 기술 혜택 전망 있지만 '가짜뉴스 플랫폼' 우려도
2018년 사실·의견 구별 25.6%뿐 'OECD 평균치 절반'
■ 경고등이 들어온 문해력
지난해 8월 한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을 했다가 오류가 나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글을 올렸다. 심심하다는 표현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으로 사용됐는데,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없다',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 등의 뜻으로 오해를 사면서 되레 더한 비난을 산 일이 있다.
이밖에도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이해했다거나, 무운(武運)을 운이 없길 바란다고 보고 이 표현을 한 당사자를 비난하는 일 등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우스운 일로 소비되고 있다.
또 관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다.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떡을 치다'는 표현을 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는 얘기도 최근 SNS에 등장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오해할만한 표현을 사용해서 문제를 자초했다는 의견이 나뉘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방법을 적은 안내문을 보내자, '요즘 누가 줄 글을 읽느냐.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내라'고 항의한 부모의 사례가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문해력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문해력 정말 위기일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동안 중단돼 현재 수준을 알기는 어렵지만, 가장 최근 결과인 2019년 발표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2018' 결과 가운데 읽기 분야를 분석하면 순위가 점차 떨어지는 추세다.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는 사례들이 단순히 문해력 문제를 겪는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한국은 2006년 556점으로 당시 OECD 회원국 평균 492점을 훌쩍 웃돌며 1위를 기록했지만, 2009년 539점, 2012년 536점, 2015년 517점, 2018년 514점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PISA는 순위를 범위 형태로 정리하고 있는데, 2018년 한국은 2~7위에 위치했다. → 그래프 참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안도할 수도 있겠으나, 학습격차를 감안하면 낙관만 할 상황은 아니다. PISA가 정의하는 읽기 소양의 정의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지식과 잠재적 능력을 계발하며,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글을 이해·활용·성찰하는 등에 관여하는 능력이다.
평균값으로 상위권을 유지한다고 해도 문해력의 차이가 벌어지면 그만큼 사회 양극화와 같은 문제로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PISA의 읽기 성취수준은 1a, 1b, 1c에서 6수준까지 8단계로 나뉜다. 하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1c가 차지하는 비율은 0.1%(표준오차 0.1%), 1b 1.1%(0.2%), 1c 4.3%(0.4%), 2수준 9.6%(0.7%) 등으로 15.1%가 들었다. 코로나19 이후 학습격차에 대한 우려가 크게 불거진 만큼 연말에 발표될 2022 PISA는 이보다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형편이다.
■ 다시 문해력
새삼 문해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문해력이 읽고 쓰는 일상적인 일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챗GPT로 대표되는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해력이 강조된다.
챗GPT 등 AI의 놀라운 기능 이면에는 '소셜미디어를 대체할 가짜뉴스의 새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CEO를 비롯해 세계적 IT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비영리단체 FLI의 'AI시스템 개발을 일시 중단하자'는 서한에 서명했다.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선전과 거짓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혼란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의도된 데이터만을 학습시켜 편향된 정보를 퍼뜨리는 스피커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2018년 PISA 평가에서 읽은 내용 중 사실과 의견을 구별해낸 한국 학생은 25.6%에 불과했다. 이는 읽기 부문에서 점수보다 월등히 낮은 OECD 평균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AI의 특성상 질문 수준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 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답변을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 성과 역시 큰 편차가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AI가 일상화된 상황에서의 문해력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EMC교육평가원 이은미 대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초학력이 저하됐을 뿐 아니라 취약층 학력격차는 더 크게 벌어져 있다"며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답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문해력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현재 초중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특히 "장애아나 다문화가정자녀 등 취약계층 아동들이 겪는 문해력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개별 수준에 맞춘 교육지원, 온-오프라인 혼합교육으로 교육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