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사진으로 출발해 확장된 예술 세계를 보여준 주명덕 작가의 사진전이 광주 닻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 '풍경, 저 너머'는 주 작가의 후반기 작업 중 '잃어버린 풍경', '장미', '사진 속의 추상' 등 세 가지 시리즈를 함께 엮었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필요 이상의 설명 없이 대상에 작위적인 개입을 피하는 방식을 평생 지켜왔다. 관람객들은 그런 그의 작품을 색감과 질감에 집중해 많은 것을 투영하고 상상해볼 수 있다.
작가 세가지 작업 시리즈 묶어
설명 없이 작위적 개입 최소화
고요한 공간감, 공기마저 차분
작가가 70대에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은 작품 'Barcelona'는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 명료한 수평선 위로 보이는 구름.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과 그 아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붉은색 카펫. 가볍게 찍어낸 한 장면은 그렇게 직관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Bilbao'는 공간에서 보이는 명암의 대비와 빛으로 생겨나는 그림자와 선들이 고요한 공간감마저 느끼게 해주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공기마저 차분해지는 느낌을 준다.
검고 짙은 어둠 속에 희미한 형상을 드러내는 풀잎과 나무줄기는 작가가 찍은 한국 겨울 산의 모습이다. 담백하게, 또는 무덤덤해 보이는 겨울 산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잃어버린 풍경(검은 풍경)' 작품들은 색감이 도드라지는 다른 작품들과 대비를 이루며 하나의 운율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장미의 모습은 백장미를 좋아하는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있었다. 입구에서 맞아주는 장미는 흑백임에도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조금씩 시들어가며 말라가는 얇은 장미 잎은 그간 지나온 작가의 세월을 녹여냈다.
백장미의 꽃말은 사랑, 순결, 평화, 존경인데, 특이하게도 시든 백장미는 '당신과 영원을 맹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평생을 함께해온 사진에 대한 영원과 사랑을 장미를 통해 맹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eoul' 연작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상 속에서 발견한 예술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도심 속 벽과 바닥이 캔버스처럼 펼쳐졌다.
벗겨진 페인트 자국, 우둘투둘한 시멘트의 질감, 누군가 칠해놓은 낙서 등을 작가는 섬세하게 포착했다. 자세히 보면 주변 어딘가에서 봤을 모습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서 또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재밌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풍경, 저 너머에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18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