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재단 대표이사, 국제 구호단체 법인 이사장, 학교법인 대표이사….' 간략한 소개말을 듣는 데만 수 분이 걸렸다. 대부분 자선활동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설명을 마친 뒤에야 교인 1만여명에 복음을 전한다는 그의 본업을 들을 수 있었다.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나서야만 하는 어려운 일들을 맡으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쑥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과연 그의 말처럼 2개 복지재단과 15개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는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반드시 맡아야 할 일들을 도맡고 있었다.
특히 지역 내 장애인 복지 관련 활동이 두드러진다. 15년 전 출범한 교회 산하 사회복지법인 '수원중앙복지재단'은 장애인과 노인, 외국인을 위한 7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밀착 관리가 필요한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의 보호 공백을 책임지고, 단기로나마 장애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지원하기도 한다. 복지기관 일부는 지자체 수탁시설로 운영되는 등 지역사회로부터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고 있다.
'돈 안돼도 누군가 나서야 할 일' 2개 재단·15개 기관 운영
1970년대 선구적 '장애인 사역' 종교 갈망한 이들 발걸음
1990년 구축 건물내 승강기 설치 설득 접근권 개선 '성과'
가정 내 고충 공감… '화려한 봄날' 정기적 부모 행사 마련
수원중앙침례교회의 유서 깊은 자선활동은 1970년대로 거슬러 간다.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지역에서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종교 활동을 갈망했던 장애인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게 됐다. 물론 긍정적인 입소문만 퍼졌던 것은 아니다.
정책적으로 복지 사업이 자리 잡지도 않았던 차,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고울 수만은 없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자구적인 복지 정신을 굽히지 않았고, 당시 '무지개 교실'이라는 작은 돌봄교실로 시작한 장애인 복지활동은 현재 수천여명이 의지하는 복지재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은 어엿한 담임목사직에 올라 있지만 젊은 시절 고 목사가 전도사로서 이곳을 처음 찾아왔던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일찍이 대학생 시절부터 영등포 대림동 산업단지 등에서 가방끈이 짧을 수밖에 없던 성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 봉사에 나서기도 했던 그였다.
그는 "신학을 전공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의 본뜻이 당연히 그런 게 아닌가 싶다"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에게 관심을 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당시만 해도 사회에 흔치 않았던 장애인을 교회를 통해 처음 접하면서 감수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한 발달장애인 가정과 겪었던 일화를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는 발달장애인 부모가 찾아와 소원이 있다고 하더라. 우리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본인이 장애인 아이를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없으니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며 "지금도 그 날 기억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50여년 지난 지금 담임목사로서 여러 장애인 복지사업을 펼치는 것은 어쩌면 그의 말처럼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교회 내부 공동체와 맞붙는 상황도 피하지 않았다. 수원에서 사역 생활을 마치고 1990년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던 고 목사가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은 '교회 건물 내 승강기 설치' 사업이었다.
당신 아이는 불쌍하지 않다 '위안'
본인 잘못인 양 자책… 위험 처해
마음 다잡고 용기 내라 응원
이미 지어진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예산과 공정 문제로 복잡한 일이었고, 교인들과 지도 장로들까지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건물 구조만으로 장애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장애인에 대한 교인들의 의식을 전환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업으로 생각해 다방면으로 설득한 끝에 결국 추진했다. 그렇게 승강기가 설치되자 교회를 찾는 장애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이런 경험에 힘입어 고 목사는 지난 2005년 다시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뒤 유사한 과정을 거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기도 했다.
고 목사는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행동으로 주변인들의 의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이러한 생각을 제 '목회철학'으로 굳건히 하는 계기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렇듯 일선에서 복지를 실천해온 고 목사지만, 여전히 각각 다른 고충을 가진 발달장애인 가정을 새로 만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장애인 보호자들이 고충을 털어놓을 때마다 고 목사는 "당신들의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는 말로 위안을 전한다고 한다.
그는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은 대개 일상이 워낙 고된 탓에 장애인 아이도 힘들 거라 느끼고, 이를 본인의 잘못인 양 자책하면서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어린아이 지능 수준의 장애인들이 스스로 불쌍하다고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그런 아이를 보는 엄마와 아빠의 심정을 이해해주기 위해서는 당신의 아이가 불쌍하지 않다고, 그러니 당신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응원해주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교회가 정기적으로 추진하는 '화려한 봄날' 행사도 이렇듯 가정 내 고충을 덜어주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교회는 10년여 전부터 매달 발달장애인 부모 수십 명의 신청을 받아 1박 2일의 국내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4시간 자녀를 돌보느라 피로가 누적된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행사로, 이 기간에 발달장애인을 돌본 경험이 있는 성도 등 교회 내 대체인력이 아이를 돌본다.
본래 2박 3일, 3박 4일로도 추진됐던 프로그램이지만 부모가 더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불안감을 호소하는 탓에 현재 체제로 갖추게 됐다. 서울 유명 관광지부터 산간, 도서 지역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 행사는 이달엔 70여명의 부모들과 함께 통영과 거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고 목사는 "단 하루만이라도 부모들이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라면서 "평생 자녀들 몸 닦아주던 부모들이, 여행 프로그램 중 발을 닦아주는 서비스를 받는 순간 눈물을 쏟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금 고 목사의 시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 사회'를 향하고 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동등한 시선에서 서로를 사회인으로서 인정하는 사회가 되려면, 물론 과정에서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생활권을 공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이에 그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와 교회는 이미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통합해 운영하는 수업과 예배를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타 지자체와 달리 도내에 존재하지 않는 맹인 대상 학교도 현재 교회가 소유한 부지에 신축을 검토하고 있다.
고 목사는 "현재 사회에서는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제대로 대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겪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서로 각자가 조금씩 결함을 갖고 태어난 존재임을 인정하고 당연한 듯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글/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사진/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고명진 목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리버티신학대학원 신학 명예박사
▲댈러스침례대학교 신학 명예박사
▲한국교회 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제77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학교법인 예닮학원 이사장
▲침례신학대학교 특임교수
▲H-net plus 대표
▲수원중앙복지재단 대표이사
▲스완슨기념관유지재단 대표이사
▲토론토 밀알교회 개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