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이 1963년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기 바란다"라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는 우리가 미술관에 가면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이다.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의 감상을 돕기 위해 백남준아트센터는 '즐거운 감상법 제안'에 나섰다.
이 감상법은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는 '보다, 천천히', 매개자와 작품의 맥락을 이해해보는 '보다, 함께', 작품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는 '보다, 자세히'로 이뤄져 있다.
'보다, 천천히'는 예술을 좀 더 참을성 있게, 또 깊게 바라보면서 관람객 스스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식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이러한 감상을 돕기 위해 감상용 의자와 타이머, 활동지로 구성된 키트를 제공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의자·타이머 활동지 제공
곳곳에 다양한 지시문… 관람 집중 돕기도
천천히·함께·자세히 '즐거운 감상법' 제안
우선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상설전시하는 'TV정원', 'TV물고기', '메모라빌리아'가 보이는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 이를 3분간 바라본다. 이후 미술관에서 제시하는 3가지 방법과, 3가지 키워드로 각각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면 된다.

식물들 사이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화면이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TV 정원' 맨 안쪽에 의자를 놓았다. 크고 작은 식물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마치 바깥세상과 차단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고무를 두드리거나 TV를 첼로처럼 연주하는 모습, 경쾌한 음악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화면에 빠져들다 보면 이내 3분이 지났다는 진동 알람이 울린다.
이후 회랑을 따라 걸으면서 보기, 중간층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 비디오 작품 '글로벌 그루브'만 집중해서 보기라는 지시문대로 다시 작품을 본 뒤 '공유', '공감', '관계'라는 키워드로 작품을 떠올렸다.
살아있는 식물과 기술의 상징인 TV, 자연과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형식의 틀을 깬 백남준의 영상들이 정원 속에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모습으로 녹아들어 한층 가깝게 다가왔다.
춤을 추는 무용수,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영상 앞으로 실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된 'TV 물고기'를 지나 책상 위에 놓인 기계 부품, 글루건과 장갑 등이 담긴 선반, 끄적인 낙서로 지저분해진 벽 등 브룸 스트리트의 백남준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메모라빌리아'를 보고 있으니 이 공간에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을 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3분이라는 시간이 길 것 같지만, 이렇듯 작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감상하고 있으면 무척이나 짧게 느껴진다. 백남준의 주요 작품을 이렇게 집중해서 보고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미술관에 오는 분명한 즐거움이 될 듯하다.
'보다, 천천히'는 올 11월까지 문화가 있는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로비에 마련된 키트를 이용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보다, 함께'는 학예사, 도슨트, 테크니션 등 백남준 아트센터의 다양한 매개자와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연간 비정기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보다, 자세히'는 하반기에 발간 예정인 '기술 보고서'를 기반으로 기술적 설치가 수반되는 백남준의 작품을 도식화해 보여주면서 작품 이해도를 높인다. '보다, 자세히'의 경우에는 하반기 중 일정이 공개되며 온라인 사전 예약으로 진행된다.
백남준아트센터 관계자는 "결국 미술관 본연의 가치는 실물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있다"며 "이번 제안을 통해 감상자들이 작품 앞에 서서 실재만이 줄 수 있는 아우라와 감동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