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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폭풍의 언덕' 공연 모습.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출간 이후 비판적인 평을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지극히 비천한 삶을 살고 있다'든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세부 묘사, 너무나도 사악한 증오와 복수에 충격과 혐오를 느낀다'든지 말이다. 강렬하고 거친 서사에 반감 가졌던 그 시대의 평가와는 달리 오늘날 '폭풍의 언덕'은 많은 이들이 훌륭한 고전으로 손꼽는 작품이 됐다.

고전이 여전히 유효한 우리 사회에서 모순과 혼돈이 뒤섞인 인간의 본성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는 '폭풍의 언덕'이 연극으로 재해석 돼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극은 무대 위에서 소설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는 듯 생생하게 펼쳐졌다. 2시간여 동안 군더더기 없는 흐름으로 원작을 풀어내는 과정이 세심하면서도 감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극은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가 쓴 소설 서문처럼 시종일관 시골스럽고, 황야투성이에 야생적이고, 히스 뿌리처럼 울퉁불퉁했다. 또 그 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황량한 자연과 몰아치는 폭풍은 단순히 무대의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전했다.

평범하지 않은 인물 내면 심리 표현 눈길
의자로 장면 입체적 구현… 내달 18일까지


연극은 '쓰러시 크로스 저택'의 세입자 록우드가 집주인 히스클리프를 만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에 다녀온 뒤 악몽에 시달리고, 두 집안의 역사를 잘 아는 가정부 넬리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시작된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 씨는 리버풀에서 한 집시 소년을 데려와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편애한다. 그의 아들 힌들리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고, 딸 캐서린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언쇼 씨가 죽고 난 후, 집의 주인이 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전락시키고 학대한다. 히스클리프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사랑했던 캐서린은 이 과정에서 쓰러시 크로스 저택의 아들 에드거의 청혼을 수락하고, 크게 상심한 히스클리프는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3년이 흐른 뒤,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한 워더링 하이츠와 쓰러시 크로스 저택 사람들을 향해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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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폭풍의 언덕' 공연 모습.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딘가 과함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내면에 가지고 있는 욕망과 본성의 한 조각이다. 이를 표현하는 눈빛과 동작 하나까지 모든 배우가 무대에서 소설 속 캐릭터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느껴졌다.

특히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행복과 위로에서 오해와 의심, 집착과 갈망, 상처와 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표출한다. 그들의 사랑은 폭풍에 휩싸여 온전하지도 순탄하지도 못했으며, 갈수록 야위고 피폐해지면서도 깊은 감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처절함이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무대 위에 놓인 의자들로 많은 장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해낸 것 또한 인상적이다. 단순한 소품이 문과 침대가 됐다가, 또 넓은 들판의 나무와 언덕이 되기도 하고,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때는 마치 워더링 하이츠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이러한 연출의 묘를 눈여겨보는 것도 극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될 듯하다. 공연은 6월 18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