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 교수
경인일보와 인터뷰 중인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 교수는 그간 경기지역의 역사 속 소외된 인물과 사건을 발굴해왔다. 2023.5.1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역사가가 전하는 한 마디마다 그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해요. 그만큼 역사에 대해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곧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역사학자의 연구실 문을 열자 헌책방에서 날법한 오래된 종이 냄새가 풍겼다. 낡은 책상 옆으로는 빛바랜 장서들이 빽빽이 쌓여 있었다. 정년퇴직을 앞둔 노교수는 "섭섭함보단 시원함이 크다"며 손사래를 치며 웃었지만, 역사에 대해 말할 때면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히 고르는 듯 천천히 답변을 들려줬다.

'국민방위군' '화성 무장항쟁' 등 사실 밝혀
5·18 민주화운동 왜곡 '새로운 관점' 호도 경계
8월 교수직 마침표 앞둬… "발굴 작업 계속"


지난 1986년부터 수원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인 박환(65) 교수는 고집스럽게 '역사 속 잊힌 존재들'을 탐구해온 학자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국가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이자 방산비리인 '국민방위군 문제'를 한 개인의 일기 등을 분석해 실증적으로 증명해냈다. 20년 전인 2003년에는 '제암리 학살사건' 위주로만 다뤄지던 화성지역의 3·1 운동과 관련해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며, '화성 무장항쟁'이란 역사적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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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교수는 '화성시 3·1운동 유적지 학술조사단'을 이끌며 화성지역 독립운동가의 수형 카드를 일일이 조사한 끝에 36명의 사진을 입수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실린 경인일보 2003년 2월 21일자 1면.

이미 흘러간 먼 과거를 되짚어 진실을 찾아가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다. 문헌 자료는 한정돼 있고, 증언을 통해 듣는 구술자료는 신빙성과 타당성을 끝없이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런 역사가의 숙명에 대해 "가장 오래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바깥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문헌 자료를 토대로 구술 증언을 듣고 현장답사를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문헌 자료들이 살아 움직여요. 오래된 글자들이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죠. 그저 자료 뭉치였던 문헌이 '동적인 역사'가 된달까."

이런 역사가의 주요 덕목 중 하나는 다양한 시각에서 치우침 없이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다. 다만, 이는 진실에서 벗어난 주장을 '새로운 관점'인양 호도해도 된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지난 2015년 극우 논객 지만원 씨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찍힌 한 사진을 근거로 북한군 개입을 주창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역사적인 주장을 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본인의 주의주장을 내세우려면 치밀하게 자료 조사를 하는 건 물론, 주변 전문가를 상대로 수없이 발표해 검증받는 게 기본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역사를 공부한다"고 답했다.

지역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역사 속 잊힌 존재들'을 좇던 박 교수의 시선은 최근 '디아스포라'를 향해 있다.

그는 "그동안 독립운동사는 애국·민족주의를 토대로 특정 인물의 영웅적인 측면만 강조해왔다"며 "대중에게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이 어디로 이주했고, 이방인 정체성을 품고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평화 같은 보편적 차원의 인권 문제로 논의를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8월, 그는 37년 동안의 대학 교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밥벌이의 굴레에서 벗어난 직장인으로서는 후련함이 엿보였으나, 역사학자라는 직업인으로서 전한 마지막 소감은 왠지 모르게 묵직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에요. 역사적 사실을 발견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데서 나오는 무거운 책임감이겠죠. 퇴임 후에도 소외된 역사를 계속 발굴하고, 더 폭넓은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싶어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