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인천시의회 제287회 임시회 제1차 행정안전위원회 회의. 첫 번째 심사 안건은 화력발전소 주변 개선 등에 대한 지원을 인천 서구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원도심활성화특별회계 설치 및 운용 조례 일부 개정안'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개정안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인천시 담당 부서와 대표 발의자인 이순학 의원에게 질의했다.
A의원은 "이렇게 조례가 개정되면 상위법 위반 아니냐"며 따져 물었고, B의원은 "지역 간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이 둘을 포함한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은 심사 끝에 해당 안건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 개정안은 의원 1명의 단독이 아닌, 11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안건이었다. 공동 발의 의원 중에는 이날 회의에서 안건 내용을 지적했던 A의원과 B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두 의원은 자신들이 공동 발의한 안건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공조한 셈이 됐다.
이와 관련해 A의원은 "개정안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공동 발의한 것"이라면서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등을 보니 법령상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판단해 질의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개정안에 대한 세부적 검토 없이 공동 발의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인천시의원들의 '묻지마식 공동 발의'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
시의원 단독발의 102건 중 3건 불과
세부적 검토 없이 통상적 참여 지적
21일 경인일보가 지난해 7월 제9대 인천시의회 출범 후 최근까지 의원 발의 조례 제·개정안을 전수 분석한 결과, 총 102건이 발의됐다. 이 가운데 99건은 가결되고 1건은 부결, 1건은 보류, 나머지 1건은 철회됐다.
의원 발의 조례안 전체 102건 중 시의원 1명이 단독 발의한 안건은 신동섭 의원이 낸 3건뿐이었다. 나머지 99건은 전부 2명 이상이 공동 발의했는데, 이마저도 10명 미만이 참여한 건 21건에 불과했다. 전체의 약 80%(78건)를 10명 이상이 공동 발의한 것이다.
지방자치법과 인천시의회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원이 의안을 발의하기 위해선 재적 의원 5분의 1(8명) 이상의 연서(동의)를 받아야 한다. 시의원 혼자서 입법을 남발하는 걸 막고, 안건에 대한 검증을 거치기 위한 취지다.
연서 방식은 '공동 발의'와 '찬성' 두 가지가 있다. 한 시의원이 다른 시의원 발의 조례안에 동의할 때, 공동 발의에 이름을 올리거나 찬성란에 서명하는 것 중 선택하면 된다. 공동 발의에 참여하는 건 단순히 해당 조례안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책임의 의미가 부여된다.
이는 의안 철회 절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의원 1명이 혼자 단독 발의한 조례안은 찬성자의 동의가 없어도 철회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발의자가 2명 이상이면 발의자 전체의 서명을 받아야 철회 청구가 가능하다. 공동 발의를 한 의원은 조례안 발의와 철회 모두에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저해… 개선 필요"
그러나 인천시의원들은 공동 발의와 찬성의 개념 차이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모습이다. 초선인 한 시의원은 공동 발의와 찬성의 차이를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며 "조례안에 찬성(동의)할 때 통상적으로 공동 발의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조례안을 발의할 때 의회에 나와 있거나 평소에 교류가 있는 의원들 위주로 서명을 받는다"며 "찬성에만 서명하는 건 기록이 안 남다 보니 공동 발의에 참여하는 게 관례가 됐다"고 했다.
한 의원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52건의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 중 공동 발의가 50건이고, 자신이 대표 발의한 건 2건에 불과했다. 이 의원과 비슷한 의원들은 3명이 더 있었다.
부산시의회 경우, 같은 기간 전체 121건의 조례안 중 10명 이상 공동 발의 건수는 단 2개뿐이었다. 대다수가 의원 1명 단독 발의였고, 나머지 의원들은 공동 발의가 아닌 '찬성' 의사로 조례안 발의에 참여했다.
부산시의회 관계자는 "우리는 원칙대로 할 뿐"이라며 "우리 시의원들은 해당 의안을 정치적 이유 등으로 혼자 추진하기 부담스럽거나 관련 분야에 전문적인 의원과 협업하는 차원 위주로만 공동 발의한다"고 했다.
공동 발의를 남발하는 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고경훈 한국지방정부연구원 지방의정연구센터장은 "시의원 개개인이 심각한 연구나 고민 없이 조례안 공동 발의를 남발하는 건 지역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 발의로 성과가 부풀려져 의원들의 의정비 인상을 정당화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공동 발의 남용이 계속될수록 시의원들의 역량은 낮아질 것이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3면([경인 WIDE] 단순 개정에도 우르르 절반 발의… 공천심사 '점수'로 전락도)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