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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회 의원들이 조례 제정·개정안 발의 과정에서 '공동 발의'를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인천시의회 전경. 2023.5.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시의원 상당수가 실적 쌓기용으로 조례 제·개정안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제9대 인천시의회 출범 후 공동 발의자가 20명 이상인 조례안이 15건이나 되는가 하면, 어떤 의원은 50건을 공동 발의했다.

'조례안 품앗이' 관행과 조례안 발의 건수가 정당 공천 등 의정활동 평가 지표로 활용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인데, 조례 제·개정에 대한 의원의 기여도와 해당 안건의 사회적 가치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후 경종 '40명 전원'
부산시의회 4명·세종 6명과 대비
상위법령 부합 일부 정비도 '18명'
동료에 '힘 실어주기' 고질적 관행

소속정당의 의정활동 평가에 악용
"거절 어렵고 찬성은 기록 안 남아"
정책보좌관제 등 역량 강화 목소리
사전 검증 입법영향평가팀 제안도

단순 조례 개정에도 10명 이상 공동 발의
제9대 인천시의회가 최근까지 8차례 회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은 102건이다. 이 중 공동 발의 조례안은 99건으로, 무려 20명 이상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것도 15건이나 된다. → 표 참조

공동 발의자가 가장 많은 조례안은 '인천시 옥외행사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안'이었다. 인천시의원 40명 전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조례안은 서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인천시 등이 주최·주관하는 행사는 물론 주최·주관 없이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 등 옥외행사의 안전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조례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인천시의원 전부가 공동 발의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의원들은 공동 발의가 아니더라도 찬성·동의(연서)란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부산시의회가 지난해 이와 비슷한 취지의 조례안을 처리했는데, 공동 발의 의원은 4명이었다. 전체 47명 의원 중 4명이 공동 발의하고 10명은 연서했다. 이와 비슷한 조례안을 처리한 세종시의회는 6명이 공동 발의했다. 세종시의회 의원 숫자는 18명이다. 서울시의회 경우 최근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20여 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했지만, 전체 의원이 100명이 넘는 만큼 인천시의회와 직접적 비교는 어렵다.

조례 개정안 중에는 상위법령에 부합하도록 일부 내용을 정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천시의회는 이런 조례안에도 10~20명이 공동 발의자로 나섰다. 인천시 투자유치위원회 위원장을 시장에서 행정부시장으로 바꾸는 조례 개정안 공동 발의자로 18명이나 이름을 올린 게 그 예다.
공동 발의 '친분 유지' '실적 쌓기용' 악용되나
공동 발의자가 많다는 것은 조례 제·개정 취지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조례안의 중요성을 가늠할 기준도 된다.

문제는 동료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례안 품앗이' 관행과 정당 공천 등 외부 평가를 의식한 '실적 쌓기용 발의'에 따른 남발이다. 그러다 보니 조례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소속 정당의 의정활동 평가와 공천 심사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공동 발의가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정활동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현역 의원 입장에서는 숫자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조례안 발의 건수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천 정가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조례안의 내용과 전후 사정 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숫자'가 갖는 무게감은 의원들 사이에서 더욱 클 수 있다"고 했다. 인천시의회 한 의원은 "의회 홈페이지만 가도 의원별 조례안 발의 건수가 다 올라와 있다"며 "동료 의원 대부분이 의정활동 평가와 관련해 조례안 발의 건수를 신경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조례안 품앗이는 고질적인 관행이다. 인천시의회 다른 의원은 "(조례안에 동의해달라고) 의원실로 찾아오는 의원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동료 의원과의 신뢰 관계상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솔직히 찬성만 하는 건 기록에 안 남는다. 공동 발의가 의정활동의 평가 기준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런 것도 염두에 두긴 한다"고 말했다.
"공동 발의 남발 예방 장치 필요"
지방의원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대표 발의'와 '공동 발의'를 철저히 구분하는 등 양보다는 질적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의원들이 얼마나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느냐는 대표 발의 건수와 실질적으로 가결된 조례안 건수로 보면 된다"며 "시의원들의 의정활동은 입체적으로 봐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지역 정가 상황에 밝은 한 인사는 "공동 발의가 정치적 의지를 모으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무조건 나쁘다고 할 건 아니다"면서도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정책보좌관제를 강화하는 등 지방의원의 입법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례 제·개정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가 공동 발의 남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고경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의정연구센터장은 "서울시·경기도의회처럼 '입법영향평가팀'을 신설해 해당 조례가 생기면 어떤 문제점이 예상되는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사전에 분석해 의원들한테 제공해야 한다"며 "그러면 시의원들이 해당 조례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얹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무분별한 공동 발의를 견제·감시할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은 "공동 발의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의원들의 조례안 공동 발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현준·유진주기자 upl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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