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지도에 나온 위치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군 경계철책 앞에서 (재)국토문화재연구원 이규민 연구원은 속살을 드러낸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올해 3월부터 문수산성 서측 성벽을 발굴해왔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년) 축조한 성곽으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른 유적이다. 병인양요로 인해 사라진 줄 알았던 해안 쪽 성벽은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나왔다. 2017년 문수산성 보수정비사업을 마치고 예산이 남았는데, 김포시 문화예술과 소속 학예연구사는 완전히 유실된 걸로 판단되던 서성벽 1.2㎞ 구간에 대해 이 잔여예산으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문화재가 있는지만 확인해보려던 게 성벽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지금의 정밀발굴조사로 발전했다.
2019년 1차 조사에서는 문수산성 7개의 출입로 중 하나였던 '서아문'과 물길을 뜻하는 '수구' 등이 발굴됐다. 이어 2021년 구간을 넓혀 2차 조사를 벌인 결과 외측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지정보축석렬' 등을 확인했고, 지난해 3차 조사에서는 체성부(성벽 몸통)와 성문지(문이 있던 자리)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4차 조사에서는 북문 인근 서성벽 회절구간과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 '여장', 공해루(서문의 이름)로 추정되는 성문지 기초 등을 발굴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여장은 2019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 발견됐다. 서성벽이 쌓여있는 구조를 최초 발견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지난 1~3차 때는 성벽이 지나간 자리를 확인하는 정도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 축조 및 관리방법을 알 수 있는 원형이 발굴되고 있다.
해안가 성벽이란 점도 4차 발굴조사를 특별하게 한다. 내륙 쪽 성벽과 달리 강화해협(염하)을 타고 침공한 프랑스 함대에 맞서 필사적인 항쟁이 벌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19세기 후반 제작된 '강화도지도'와 일제강점기 '지적원도'를 지금의 지적도와 비교 분석해 서성벽이 존재했던 위치를 짚어가고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상당 구간은 아스콘 도로 밑에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수산성 서성벽 구간 4차 정밀발굴조사는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될 예정이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