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과 과정은 모두 다를지라도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각자의 인생이 다른 것처럼 삶을 마감하는 순간도 저마다 다르다. 우리 주변에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쓸쓸히 영면에 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기환(43) 부귀후원회 대표는 지난 2019년부터 저소득 가정, 조손 가정, 홀몸노인, 이주노동자 등을 위해 무료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돈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들을 돕기 위해 장례 지도사 등이 힘을 모아 후원회를 만들고, 고인들이 다음 생에는 귀하게 살라는 의미로 후원회에 '부귀(復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 대표는 지난 2005년 장례업에 처음 발을 들였다. 장례식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고인과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듣게 됐다는 그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2013년 지역의 장애인복지센터 등을 찾게 된 것이 무료 장례 지원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가 대표는 2017년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본업을 살려 봉사를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듬해 서울에서 저소득층 등을 위한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단체인 '나눔과 나눔'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됐다.
이 단체에서 활동 중인 지인이 인천 미추홀구에서 사망한 한 중년 여성의 사연을 알려왔다. 5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14살, 16살 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던 여성은 생활고를 겪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남겨둔 채 그만 세상을 등졌다.
가 대표는 장례 절차도 모르고, 가진 돈도 없는 어린 남매를 돕기로 했다. 그는 "비록 간소한 장례였지만, 어려운 이들의 장례를 처음 도왔던 가정이라서 나에겐 의미가 더욱 크다"고 했다.
2018년 14·16살 남매 어머니 장례 도운 일 가장 기억
칠판에 쪽방촌·노숙인 밀집지역 일일이 손으로 적어
시신 인수자 찾지 못하면 최대 5년까지 봉안·합동 매장
형편 나아진 유족 유골 안내 못 받아 폐기 사례 지적도

부귀후원회는 인천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한 합동 추모제도 열고 있다. 생을 마감하면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이들이기에 시민과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하자는 취지에서 추모제를 열게 됐다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 또는 연고자(부모·배우자·형제 등)가 없거나 가족·친지가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한 경우를 말한다.
가 대표는 사무실 칠판에 무연고 사망자, 그리고 인천지역 쪽방촌과 노숙인 밀집지역 등을 일일이 손글씨로 적어 놨다. 고인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항상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다. 그는 "한 노숙인은 고인이 된 친구를 합동 추모제에서 찾았던 적이 있고,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110세가 넘게 장수한 노인도 있었다"고 전했다.
부귀후원회가 추산한 인천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 213명, 2020년 277명, 2021년 286명, 2022년 372명 등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두고 가 대표는 "무연고 사망자들도 과거엔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사회적 네트워크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끊기면서 홀로 고립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네트워크를 정부나 지자체가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무연고 사망자도 줄고,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권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시는 고독사나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인천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마련했다. 이 조례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각 지자체는 먼저 시신 인수자를 찾는다. 유족 등을 찾지 못하거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유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각 군·구청이 지정한 업체에서 간소한 장례를 치른 후 인천가족공원 별빛당에 유골을 최대 5년까지 봉안했다가 합동 매장한다.
가 대표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당장 가족의 시신을 인수하지 못한 분들도 형편이 나아졌을 때는 유골을 찾아갈 수 있다"며 "그러나 이를 안내해주는 곳이 없어 유골은 시간이 지나면 사실상 '폐기' 처분된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업체가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장례식장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가 대표는 인천시가 시민이 낸 세금을 들여 무연고 사망자의 추모공간을 제공하고, 공영장례를 치러주는 만큼 이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장례는 아무리 간소화해도 300만~5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선의로 시작했더라도 후원해 주는 분들이나 동료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해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줄도록 정부 지원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관심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가기환 대표는?
▲충남 태안 출생(1980)
▲보람 상조 입사(2005)
▲부평장애인종합복지관 등에서 봉사활동 시작(2013)
▲장례 지도사 자격증 취득(2017)
▲부귀후원회 출범(2019)
▲인천에서 저소득층 등을 위한 공영장례 지원(2019~)
▲인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 개최(2019~)
글/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