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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말, 현궁미사일 오발추락사건 이후 주민들이 용문산사격장 폐쇄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양평군 제공

"합의각서에 군단장 서명이 들어가면 뭐하나. 인명사고 발생하면 책임질 수 있나."

군(軍)이 주민들에게 공지되지 않은 사격을 실시하다 산불이 난데 대해 양평군 주민들이 '용문산사격장 폐쇄투쟁'을 다시 재개하기로 결의했다. 2021년 미사일 오발사건 이후 민(民)·관(官)·군(軍) 3자 합의각서를 체결한 지 불과 2년4개월 만이다.

지난 23일 양평군 양평읍에 위치한 용문산사격장(양평종합훈련장)에서 박격포 사격 중 산불이 났다. 진화엔 헬기 6대가 동원됐으며 산불은 6㏊의 산림을 태우고 6시간이 지나서야 진화됐다.

군단장 서명에도 유명무실해진 '합의각서'
'주민에게 공지되지 않은 사격, 인명사고 우려'
범대위, 책임자 사과 및 사격장 사용정지 요청
군 "앞으로 약속 잘 지킬 것… 행정적 실수"

게다가 이번 군의 포사격은 2021년 체결된 ▲사격훈련 일정 협의 ▲사격훈련 2주 전 지역주민에게 일정 통지 등의 합의각서 내용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주민들은 2020년 현궁미사일이 민가 20m 거리에 낙하한 사고에 '용문산사격장 폐쇄투쟁'을 시작했는데, 투쟁 3개월 후 허강수 7군단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2030년을 목표로 용문산사격장 이전' 등의 내용이 담긴 민·관·군 3자 합의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용문산사격장폐쇄범군민대책위원회(위원장 이태영, 이하 범대위)는 26일 '군의 합의되지 않은 사격에 산불이 발생한 데 대해 사격장 폐쇄운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히며 26일 오전 11시30분 양평군청 4층 대회의실에서 민·관·군 상생협력 실무협의를 소집했다. 이 위원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회의를 소집하고 주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그간 군 당국에 고사리 채취에 나선 주민들도 있어 사격 일정 준수와 신중한 고려를 부탁했으나 무의미하게 됐다. 작년에도 협의를 어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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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용문산사격장 폐쇄 투쟁 3개월 후 허강수 7군단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2030년을 목표로 용문산사격장 이전' 등의 내용이 담긴 민·관·군 3자 합의각서를 체결했으나 범대위는 2년 4개월만에 사격장 폐쇄투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양평군 제공

또 범대위 측은 이번 7군단 직할 강습대대의 사격일정은 예정되지도 않았고 주민 합의도 없었던 훈련이며, 군의 화재발생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군이 신뢰에 의해 작성된 합의각서 내용을 어겼다며 일방적 사격에 의한 산불발생 재발 방지 약속과 책임자 사과, 합리적인 결과 보고와 함께 사격장 사용정지 등을 요청했다.

사격장 인근 주민들도 참석해 "사격일정에 없는 사격을 실시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7군단장 서명이 들어간 합의각서가 의미가 없다. 실무자들의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명사고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등 군의 합의각서 내용 불이행을 지탄했다.

이에 7군단 교훈처장 차동영 대령은 "이번 일이 생긴 부분에 대해 주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범대위와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며 "11사단, 군단 직할부대의 업무상 행정적 착오를 확인했다. 다른 의도가 없는 순수한 행정적인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용문산사격장은 2008년 4.2인치 조명탄 관광버스 관통사건부터 2014년 전차포 포탄 펜션 지붕 관통, 2020년 민가 인근 현궁 미사일 낙하사건까지 최근에도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양평/장태복기자 jk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