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국의 중소도시들은 총성 없는 '문화관광전쟁'을 벌이고 있다. 번듯한 첨단산업이나 제조산업 하나 없어도 지역경제를 떠받칠 만큼 경제파급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시는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하나로 매년 전체 인구수의 수십 배에 달하는 관광객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끌어오고 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으면 서울시가 벤치마킹에 나설 정도다. 이처럼 문화관광자원은 중소도시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열어 줄 '미래 먹거리'로 통하고 있다.
오랜 세월 수도권과 접경지 규제에 개발이 묶인 경기 북부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지역 지자체들은 '낙후도시'란 멍에를 벗기 위해 앞다퉈 문화관광자원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지자체가 양주시다.
양주시는 조선시대 경기도의 한강 이북을 호령하던 종가로 곳곳에 문화유산을 보유한 '역사 도시'로 불린다. 2~3년 전부터 이를 십분 활용해 문화관광산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지역의 숨은 관광상품 발굴, 유명 화가 미술관 개관 등 전에 볼 수 없었던 관광자원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곳은 양주시 문화관광과로 문화관광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세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서에서 올해 추진하는 역점사업을 통해 양주시의 유망 관광자원과 개발실태를 살펴본다. → 편집자 주
태조 이성계 인연 '회암사지' 세계문화유산 추진, 문화재청 잠정목록 첫 관문 통과
'천일홍 축제' 6년째 입소문·'왕실축제' 어가행렬 눈길… 기산저수지 등 힐링코스
'韓 근현대 미술사 한획' 장욱진·민복진 미술관 새로운 문화예술 명소로 인기몰이
■ '세계문화유산' 바라보는 회암사지, '역사 돌아보는 관광'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래하던 사찰 회암사는 이제 터만 남았으나 그 자체로도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4세기 동아시아 불교 선종 문화의 번영과 확산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시는 회암사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2018년부터 세 차례 도전한 끝에 지난해 문화재청의 잠정목록으로 선정되는 데 성공하며 첫 관문을 통과했다. 최종적으로 회암사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경우 지금과는 또 다른 국제적 위상을 지닐 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도 훨씬 큰 가치를 얻게 된다.
문화관광과 산하 조직 박물관·세계유산추진·문화재종무 등 3개 팀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을 중심으로 회암사지의 문화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회암사지를 국내에 더 많이 알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불러 모으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 박물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등재 기원 슈퍼콘서트'도 이 사업의 하나로 기획돼 사전예매 시작 30분 만에 5천 석이 매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박물관팀은 장기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비해 전시행사와 교육프로그램 다변화, 전문가의 문화관광해설 등 회암사지와 박물관의 관광객 서비스질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팀 관계자는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기관으로 회암사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과 더불어 역사관광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즐기고 쉬는' 관광 트렌드로 승부
즐기고 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힐링 여행'이 여행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으며 이런 여행 수요를 잡으려는 지자체들의 관광개발이 한창이다. 양주시도 이 흐름을 겨냥한 축제와 관광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화관광과의 문화예술팀과 관광진흥팀이 해당 업무를 주도한다.
문화예술팀이 기획한 '천만송이 천일홍축제'는 전국적인 '꽃 축제'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은 성공 사례로 꼽히며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2017년 첫해부터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대박이 나 올해로 6년째 이어지고 있는 양주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떠올랐다.
덕분에 축제가 열리는 '나리농원' 주변 상권은 축제기간 관광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3년간 축소됐던 축제가 제모습을 찾게 돼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양주에는 천일홍 축제와 견줄만한 축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회암사지 왕실축제다. 회암사지가 조금씩 명성을 얻으며 왕실축제 또한 즐길 만한 이색 축제로 덩달아 유명해지고 있다. 올해는 경기도가 '경기관광축제'로 선정해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임금의 나들이 행차를 재현한 '어가행렬'은 축제의 꽃이자 특색 있는 볼거리가 되고 있다. 또 한복모델 선발대회, 각종 체험행사 등 부속 행사의 다양화로 보는 축제에서 즐기는 축제로 바뀌고 있다.
이외에도 장흥관광지와 기산저수지는 수도권에서 꽤 알려진 힐링 여행 코스로 최근 시는 이곳을 재정비해 휴식 공간을 더욱 확충했다.
여기에 올해 4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시티투어 버스'는 양주지역 명소들을 당일 코스로 둘러볼 수 있는 관광상품으로 차츰 인기를 얻고 있다.
관광진흥팀 관계자는 "양주지역에는 편안히 즐기며 쉴 만한 관광자원이 풍부해 이를 상품화하는 사업이 최근 몇 년 새 활발해 지고 있다"며 "관광상품 개발과 더불어 관광 편의를 확충하는 사업도 병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미술작품과 함께하는 휴식
양주시에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두 곳이나 있다. 문화관광과 미술관팀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민복진미술관'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미술관이라고 소개한다.
장욱진미술관은 미술관 자체가 예술품이란 말을 듣는다. 영국 공영방송사 BBC가 이곳을 2014년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으로 뽑을 정도다.
이곳에는 장욱진(1917~1990) 화백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 여러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미술전시회도 자주 열린다. 2013년 문을 연 장욱진미술관은 이제 누구나 찾아와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로 자리 잡았다.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민복진(1927~2016) 작가의 이름을 딴 민복진미술관은 지난해 3월 개관해 양주시의 새로운 문화예술 명소가 되고 있다. 민복진 작가의 조각 작품과 드로잉,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의 역사가 깊은 유럽과 북미에는 시골의 작은 미술관조차 지역 관광명소가 되는 경우가 흔하지만, 국내에선 이제 막 활성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술관팀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지역 출신 예술가를 기리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늘고 있고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며 "전시나 관련 연구, 문화행사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