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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극단의 '죽음의 배' 연출을 맡은 임지민 연출가. 2023.6.21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관객들에게는 같은 크기의 무대가 다르게 인지될 것 같아서 재미있으실 거예요."

29일부터 7월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경기도극단이 선보이는 레퍼토리시즌 '원스테이지(One Stage)'는 하나의 무대에서 '갈매기'와 '죽음의 배' 두 작품이 차례로 관객을 만나는 공연이다. 단순히 무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조명, 의상, 오브제, 음악, 분장 등 작품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이 두 작품을 함께 만들어내며 각기 다른 궤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는 '종합예술'의 영역과도 같다.

이번 공연에서 '죽음의 배' 연출을 맡은 임지민 연출가는 "모든 것이 새롭고 특별하다"고 했다.

경기도극단과의 작업은 처음인 그는 "배우들이 더 적극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아 엄청난 힘을 받고 있다. 마치 오래전에 만난 사람들처럼 짧은 기간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며 "한태숙 감독님은 물론 평소 존경해왔던 디자이너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예술적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무국적 선원 삶 그린 1959년 영화 각색
뛰어난 공간연출… '상대성' 구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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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극단의 '죽음의 배' 연출을 맡은 임지민 연출가가 이번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죽음의 배'는 1959년 영화 'Das Totenschiff'를 각색한 작품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뉴올리언스 출신 미국 선원 필립 게일이 하룻밤을 같이 보낸 여자에게 지갑과 수첩을 도둑맞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모두 잃자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다른 나라로 추방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버림받은 무국적 선원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주인공의 힘들었던 여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임 연출은 단지 필립 한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등장하는 여러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영화의 방식을 2023년 관객에게 유효하게 하기 위해 '이것이 어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하게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내용의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래서 극 중 모든 인물을 살아있게 하고 싶었고 관객들이 그들에게 투영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뛰어난 공간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임 연출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성'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도 기대된다.

그는 "극에 나오는 인물이 1명이든 10명이든 각자 자기만의 세계와 판단 기준이 있다"며 "객석이나 무대 사이를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때문에 객석과 무대를 섞어놓는 방식을 택해왔던 그에게 이번 무대는 큰 도전과도 같았다.

임 연출은 "극 중 인물을 바라보는 반응을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 무대 안에 여러 시공간을 중첩시켰다"면서 "배우들에게도 '관객석의 방향을 의식하지 말고 각자의 공간을 살아라. 각자의 삶이 이 무대 안에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사회와 국가가 가지고 있는 규정과 규범이라는 프레임에 끼여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죽음의 배'는 한태숙 감독의 창작극 '갈매기'와 함께 인간의 내면과 존재, 처절한 생존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더해 감각적으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관객분들이 어떤 것을 느끼고 가실지 모르겠지만, 비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범한 사람의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