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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1960)'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천 개의 점이 모여 만든 푸른 바다 빛 형상. 가까이서 보면 빨강·노랑·초록색 점이 캔버스에 빼곡히 찍혀 있지만, 가지각색 점들은 멀리서는 모두 짙은 파란색으로 합쳐진다. 앞서 달과 나무, 그리고 달항아리와 고향의 여인들 모습을 담았던 그의 그림은 세월이 흘러 아주 단순한 작은 점으로 수렴한다. 작가는 이역만리 떨어진 타향에서 지인, 고국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수천 개의 점을 하나하나 찍어갔다. 어쩌면 고유한 파란색, '환기 블루'는 '그리움의 블루'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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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환기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실 내부 모습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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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환기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실 내부 모습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수화 김환기의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는 김환기가 걸어온 40년 추상 여정을 총망라한 전시다. 김환기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추상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자,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던 세계적인 추상화가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표 색상 파란색은 고유한 형태의 점·선·면과 합쳐져 '환기 블루'라고 불린다.

전시실은 '환기 블루'가 담긴 점묘화 등 대표작에다 풍경과 정물을 재구성해 표현한 초기작까지 더해져 풍성하게 채워졌다. 유화와 드로잉 등 120여 점의 작품은 물론이고, 유품도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기에 눈여겨 볼만하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추상 미술 선구자
초기작부터 유품까지 120점 작품 전시
1부 달/항아리 주제… 한국의 전통 살려
2부 '거대한 점' 뉴욕 이주시기 점화 작품 많아
점·선·면 활용… 마티에르 기법 '야상곡' 그려
1970년에 만든 '다시 만냐랴' 전면점화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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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사용하던 화구가방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전시실 동선은 시대에 따른 김환기 작품의 화풍 변화를 관람객이 자연스레 체감하도록 시간순으로 짜였다. '달/항아리'라는 주제의 1부에서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환기의 고향인 전남 안좌도의 풍경을 추상으로 표현한 '섬 이야기(1940)', 달빛에 물든 달항아리만의 단아함을 정적으로 담아낸 '달빛교향곡(1954)'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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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섬이야기(1940)'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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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달빛교향곡(1954)'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37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환기는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깃든 미학적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데 몰두한다. 그 정점은 1950년대이던 파리 유학 시절 달항아리를 통해 드러난다. 달항아리는 김환기 초·중기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달항아리를 추상화하거나 여러 방식으로 구도를 달리해 캔버스에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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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모란, 고목과 항아리(1950년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1960년대부터 김환기는 모든 형태를 점·선·면으로 단순화시켜 자연의 본질에 접근하는 전면점화 분야를 파고든다. 2부 '거대한 작은 점'은 김환기의 미국 뉴욕 이주 시기인 1960년대 이후의 점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는 한 예술가가 겪은 역경과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굴지의 작품을 남긴 성장사를 엿볼 수 있다.

'야상곡(1964)'은 김환기가 뉴욕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그는 마티에르 기법을 이용해 붓 대신 나이프로 물감을 두껍게 칠했다. 종전 김환기 작품과는 다른 화풍이라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작품을 향한 뉴욕 미술 평단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흔한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일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김환기는 나이프를 손에서 놓고 붓으로 점을 찍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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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야상곡(1964)'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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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많은 시행착오와 역경을 거치고서 마침내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탄생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김환기의 점화 작품을 널리 알린 신호탄이었다.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이 작품은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1970)'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가족에게 부친 편지에서 이렇게 심정을 전했다. "오만가지, 죽어간 사람, 살아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풀 포기, 꽃잎. 실로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간다. … 예술이란, 절정이 없는 산이로다."

수화 김환기의 다양한 작품과 유품을 살피며, 이내 '점을 찍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