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산하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1990년 처음 '기후위기'를 경고한 뒤 30년이 지났다. 당시 IPCC는 1차 종합보고서를 통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후"가 미래에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기후위기는 이제 현실이자 전 세계가 당면한 최대 과제가 됐다.
지난 5월 찾은 케냐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겪고 있었다. 수년간 가뭄을 걱정했지만, 이젠 홍수로 마을이 잠기고 있고 계절마저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인 케냐는 당장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고 싶어도 관련 인프라와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 대한민국은 정부뿐 아니라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도와 도내 시군들까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며 케냐를 비롯해 기후변화로 신음하는 국가들을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국가들이 처한 위기 상황과 '기후 선진국'을 표방하는 한국의 기후 정책이 어떤 영향을 줄까.
지독한 가뭄과 살인적 폭우 반복 마을까지 삼키기도
선진국 뿜어낸 탄소 피해 고스란히 저개발국에 '타격'
대규모 벌목·규제없는 개발… 쓰레기도 수년째 방치
경기도 전국 유일 'RE100' 김동연 '기후도지사 자처'
'지구의 날' 기후변화주간 운영에 환경 캠페인 '적극'
시흥·광명 등 확산 신재생에너지 전환·사업에 공들여

■ 가뭄과 폭우, 이상기온 일상된 케냐
지난 5월 13일 기자가 찾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이날 오전 10시부터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시작됐다. 케냐의 우기는 통상 5월 이전에 끝나고, 저녁 시간대에 비가 내리는 게 특성이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우기가 6월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아침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설명이다. 실제 이날 나이로비에서 지방인 나쿠루로 향하는 길목에는 범람한 하천으로 길이 없어지거나 잠긴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기후변화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2010년대에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는 지독한 가뭄에 시달렸다. 2017년 나라 절반 이상이 가뭄이 든 케냐는 정부가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고, 먹을 물이 부족해 대기근에 직면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프리카의 강수량은 요동쳤다. 건기엔 완전한 가뭄이, 우기 때는 극단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변화를 맞이하면서다.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민주공화국은 지난 5월 폭우와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400명 이상이 숨졌고, 케냐도 지난해부터 우기가 길어지고, 집중호우 빈도가 높아지며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들이 발생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를 이상기온 원인으로 지목한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뿜어낸 탄소로 지구 온도는 1℃ 정도 상승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개발 국가들에 돌아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가 겪는 이상기온에 대해 "기후변화에 책임이 적은 국가가 대신 피해를 보는 대표적 예"라고 짚었다.

■ 기후위기 대응 여력 없는 아프리카
이날 수도 나이로비 외곽에서 케냐 중서부인 나쿠루로 향하자 대규모 벌목 현장이 나타났다. 도끼를 든 수십 명의 일꾼들이 이리저리 밑동만 남은 나무 주위를 움직이며 벤 목재를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에선 굴착기 3대가 분진을 가득 내며 작업을 진행했다.
초원과 사막으로 뒤덮인 아프리카에서 케냐는 울창한 나무와 숲을 보유해 나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케냐 출신의 환경운동가인 왕가리 무타 마타이가 나무 심기 운동으로 2004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환경보존에 힘 써왔지만, 이제는 자국의 발전을 위해 본격적인 개발과 현대화에 뛰어들면서 벌목이 성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친환경차 제작과 보급에 열을 내는 것과 달리 케냐 도로는 검은 매연을 내뿜는 공해차량들로 가득했다. 현재 케냐에 수입되는 차량 대부분은 연식이 오래돼 가격 부담이 적은 중고차량이다.
더군다나 전기·하이브리드 차량의 보급을 지원할 인프라도 부족하며 배출가스가 많은 차량에 대해 저공해조치 개조나 규제도 부재한 상태다. 대중교통인 버스도 노후화 정도가 심해 창문을 열면 나이로비 공항 인근과 시내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원 순환 시스템도 문제가 크다. 분리수거 체계와 배출, 수거, 처리로 이어지는 관리 시스템이 부재해 소규모 마을로 이동할수록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소각이나 매립 시설도 없어 쌓인 쓰레기들은 수년째 방치되는 실정이다.

■ '기후도지사' 자처한 김동연의 경기도, 기후위기 대응에 뛰어들다
"더 이상 타협은 안 된다. 지금, 여기가 우리의 최후 저지선이다. 여기가 우리의 최후 보루다."(그레타 툰베리)
열다섯 살 나이로 환경 운동에 나선 그레타 툰베리는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구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1.5℃'를 넘지 않기 위해선 국가뿐 아니라 기업, 단체, 개인까지 모든 주체가 기후위기 대응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취임 후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 중 하나가 됐다. 김동연 지사는 스스로 '기후도지사'라 칭하며 공공기관 유휴부지 전체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전국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RE100 실천에 나섰다. RE100 기업이나 기관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정책이다.
조직개편을 통해 환경국을 기후환경에너지국으로 전환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ESG 경영 확산을 지원하는 담당 조직을 신설했다. 지난 4월 22일에는 '지구의날'을 기념해 일주일간 기후변화주간을 운영하며 광역단체 주관의 환경 캠페인도 진행했다.
경기도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시군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시흥시는 경기도 RE100 비전 선포식이 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이후 원전 6기 규모(9GW)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확충, 공공기관 100% 신재생에너지 전환 등 도의 기후정책에 발을 맞추고 있다.
제1차 시흥시 환경교육종합계획도 수립해 환경시민 육성과 생태도시 조성,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환경교육 협력 기반 구축 등의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탄소중립도시를 선포한 광명시도 지난해부터 수소복합충전소를 확대하고 있고 태양열·태양광·지열을 사용하는 시민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살기 좋은 미래를 보장할 기회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IPCC가 올해 채택한 6차 보고서는 최근 기후 상황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지구 평균 온도 마지노선인 1.5℃에 근접하는 속도가 기후위기 대응력에 비해 여전히 빠르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 기후재난은 일상이 되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 피해도 커지고 있다. 김동연 지사가 '기후도지사'를 자처하며 적극적인 정책에 나서고 있지만, 도내 환경단체들은 경기도가 계획한 만큼, 이행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기후위기 경기비상행동은 지난 1월 경기도와 시군의 탄소중립 관련 제도·행정·재정적 구조가 취약하다고 짚으며 "탄소중립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과 총괄기능을 수행할 전담부서 설치가 시급하며 탄소중립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다양한 이행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며 "도와 시군의 탄소중립 지원센터 등 설치와 이행을 위한 행정조직 개편 등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