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남(63·사진) 전 주가봉 한국대사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그런 인천의 개방성을 떠올렸다. 그의 고지식하면서도 유연하고, 단호함 속에 신중함을 담고 있는 모습이 고향 인천과 닮아 보였다.
박정남 전 대사는 직업 군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충남 논산 연무대초등학교(현 연무초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인천서흥초로 전학하면서 인천에 정착했다.
인천남중, 인천대건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1991년 외무고시 25회로 외교부에 입부했다. 스리랑카, 미국, 폴란드, 이스라엘, 이집트, 러시아, 가봉 등 7개국에서 근무했다.
직업군인 부친 따라 서흥초 전학
내성적 성격 나라별 조크로 극복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해야"
외교관 생활에는 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상대방이 존재한다.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다. 한국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거나,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요구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그는 내성적 성격을 조크로 극복했다. "거의 모든 상황에 쓸 수 있는 조크"를 영어, 불어, 러시아어, 아랍어로 익혔다. 또한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린 결론은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인천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주한 미국 공사관의 외교관으로 조선과 미국을 연결한 호러스 알렌(Horace Allen, 1858~1932)의 별장이 있었다. 1901년 완공돼 인천 거주 외국인의 사교장으로 쓰인 제물포구락부는 서울 정동구락부보다 3년 앞선다.
차이나타운을 비롯해 인천 전역에 여러 국가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돼 있으며, 한국 첫 공식 이민이 시작된 인천에 최근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이 들어섰다. 이역만리 타국 생활 이민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는 과제가 인천시민 앞에 놓여 있다.
고향 인천에 재외동포청이 들어섰다는 것은 외교부 출신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재외동포들을 만난 박정남 전 대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박 전 대사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여러 여건이 다르다고 해도 '베이직 휴먼 네이처'(인간의 본성)는 모두 똑같다.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는 입장에서 접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인천 출신으로 세계를 경험한 외교관이 제언한 공존의 조건이다. → 관련기사 5면([I'm from 인천·(5)] 고집 있던 소년, 7개국 휘젓는 공직자 길을 걷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