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창단한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는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이듬해인 2004년 3월1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J리그 감바 오사카와의 창단 첫 친선 경기를 시작으로, K리그 우승 문턱까지 갔던 2005년 챔피언 결정전, 2012년 3월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경기, 강등의 문턱에서 우여곡절 끝에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한 2016년 K리그 최종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지난 시즌 등 그동안 인천 유나이티드는 팬과 함께 울고 웃으며 600여 경기를 치렀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했던 홈 경기 가운데 대부분을 함께 한 사람이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운영 중인 기자단(인천UTD)의 '명예기자' 남궁경상(56)씨가 그 주인공이다.
인천UTD 1기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한 남궁씨는 20년 동안 인천 유나이티드 홈경기를 찾아 선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 촬영과 축구를 좋아하던 30대 보습학원 원장은 어느덧 50대 사진사가 됐다. 인천 유나이티드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열악한 재정에도 매년 K리그1 잔류 '생존왕' … 팬들 열정적 응원 덕분
골 넣은 선수 관중석 달려가 함께 환호…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국내 최고
20년간 활동하며 직업까지 사진사로 바뀌어… 숙녀가 된 딸도 열렬한 팬
남궁씨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팬이 된 것에 대해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해 인천에 프로축구단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지역 축구팀의 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7살이던 딸, 아내와 함께 시민 주주가 되면서 창단 첫 경기부터 축구장을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 유나이티드 기자단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좋아하는 취미를 살리고자 지원했는데, 어느덧 20년 동안 인천 유나이티드와 함께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명예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20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홈 경기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남궁씨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가게 된 홈 경기는 6경기뿐이다.
그는 "처음 기자단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모든 홈경기 사진을 찍겠다고 각오를 다졌다"며 "내가 사랑하는 팀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남궁씨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으로 2005년 챔피언 결정전을 꼽았다. 인천은 전·후기리그를 통합한 승점 1위에 올랐지만, 당시 K리그 규정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아쉽게 울산에 우승을 내줬다.
그는 "2005년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우리 팀이 5대1로 대패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며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했는데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배해 억울하게 우승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펑펑 울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된 유상철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2019년 11월 경남과의 최종전에서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사진을 찍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K리그1에서 매년 우승 경쟁을 하는 강팀이 아니다. 시민구단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재정이 탄탄한 기업구단에 주축 선수를 빼앗겨, 강등권에서 사투를 벌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여러 어려움에도 단 한 번도 K리그2(2부리그)로 강등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왕'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매년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은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한몫했다는 게 남궁씨의 생각이다.
그는 "팬들의 열정으로 인천 유나이티드가 매년 강등권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며 "강등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가을이 시작되면 숨어 있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주고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국내 축구장 중 단연 최고라고 남궁씨는 말했다. 그는 "골을 넣은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함께 환호하는 모습은 전국의 축구장 중에 가장 최고의 장면이라고 자부한다"며 "팬들과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축구장이 만들어져 인천UTD 명예기자로서 정말 뿌듯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사진을 찍으면서 남궁씨는 직업도 바꾸게 됐다. 아내와 함께 보습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스냅 사진을 찍는 사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보람을 느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훨씬 즐겁게 살고 있다"며 "취미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게 돼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인천UTD 사진기자를 하게 된 것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J리그 빗셀 고베로 이적했다가 한 시즌 만에 지난 10일 인천 유나이티드에 복귀한 몬테네그로 출신 공격수 스테판 무고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천은 늘 나의 마음속에 있다. 인천은 늘 나의 도시, 나의 구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궁씨에게도 그런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강원도 출신이지만, 이제는 인천에서 산 지가 더 오래됐다. 인천은 제2의 고향"이라며 "내가 사는 지역에 생긴 첫 축구팀의 경기 장면을 창단 때부터 찍을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처음 축구장을 찾았던 7살 딸은 20대 중반의 어엿한 숙녀로 자라 인천 유나이티드 홈경기를 찾는 열렬한 팬이 됐다고 한다. 형·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던 선수들은 모두 은퇴하고, 이제는 남궁씨의 딸보다도 어린 선수들이 필드를 채워 나가고 있다.
남궁씨는 "인천 유나이티드 유소년팀인 대건고 경기도 사진을 종종 찍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열심히 운동하던 선수들이 지금은 1군에서 골을 넣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특하다"며 "이제는 선수들이 내 자식 같고, 가족과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할아버지가 돼서도 인천 유나이티드 역사의 한순간을 꾸준히 카메라 앵글에 담는 것이라고 한다. 남궁씨는 "손자를 데리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 인천 유나이티드의 사진을 찍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며 "힘이 닿는 데까지 인천 유나이티드와 함께하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남궁경상 인천UTD 명예기자는?
강원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인천에 정착한 남궁경상씨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운영 중인 기자단 '인천UTD'의 1기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동안 인천UTD 사진기자로 활동한 그는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와 팬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